[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여당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당권주자 윤곽이 드러난 가운데, 용산의 의중에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당 지도부 교체 과정에서 잡음이 반복적으로 터져나왔고, '윤심(尹心)'의 향방이 선거판을 흔들었던 탓이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 열리는 첫 전당대회인 만큼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차기 지도부 구성에 따라 당정 관계도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둔 23일, 유력 당권주자들이 차례로 출마 선언하며 당대표 선거 레이스를 시작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국회 소통관에서 나경원 의원을 시작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후 2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오후 3시)이 순차적으로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앞서 지난 21일 본인의 지역구에서 일찌감치 출마를 공식화했다. 당권 도전이 예측됐던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 김재섭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여당 당대표 선거는 사실상 4파전으로 압축됐다.
전당대회 극초반인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전 위원장이 선두를 달리는 '어대한(어차피 당대표는 한동훈)' 분위기지만 중량감 있는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면서 선거 결과 예측은 안갯속에 빠진 형국이다.
이번 전당대회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윤심'의 영향력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선 직후 "당 사무와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다"며 당·정 분리를 강조했지만, 여당은 취임 후 줄곧 용산발 '당무개입' 잔혹사를 겪어야 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두 달 만에 이준석 전 대표가 '성 접대 의혹'으로 당 징계를 받고 물러났는데 윤 대통령이 권성동 당시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 1차 당무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전당대회 룰 변경(당원투표 100%)과, 나경원, 안철수 등 유력 당권주자들의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2차 당무개입 논란이 있었다. '윤심'을 앞세운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과반 득표로 당선됐지만, 김 전 대표도 거취 압박을 받다가 전격 사퇴했다. 이후 등장한 한 전 위원장 역시 윤 대통령과 두터운 친분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용산의 압박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한 전 위원장 입을 통해 알려져 파장이 컸다.
정치권에선 4명의 당권주자 중에선 원 전 장관이 친윤(친 윤석열) 세력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었다. 원 전 장관이 당대표 출마를 예고하기 하루 전인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원 전 장관을 만났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엘살바도르 대통령 취임식에 대통령 특사로 다녀온 후 이에 대한 보고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원 전 장관을 특사로 임명해 자연스러운 소통 기회를 마련한 것이란 관측이 높다. '국민의힘 당대표 출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최근 원 전 장관의 당대표 도전에 대해 "윤 대통령이 다른 후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며 "대통령 의중이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원 전 장관을 차기 당대표 적임자로 낙점했다는 것이다. 원 전 장관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인수위 기획위원장, 초대 국토부 장관을 지냈고, 지난 총선에서 험지에 출마해 이재명 대표와 맞붙으면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당대회는 이전과 달리 용산의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 총선 국면 내내 대통령실에 끌려다니다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자성과 당정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30%대 초반에 머물러 있고 친윤 세력도 분화하면서 여당에 대한 대통령 입김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강공을 펼치고 있어 오히려 안정된 당정 관계를 요구하는 당내 여론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당대표가 누가 될지에 따라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도 이전과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유력 당권주자들의 향후 당정 관계 수립에 대한 인식 차이부터 제각각이다. 원 전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 국정운영에 참여한 경력을 강조한 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책임지겠다"며 신뢰 있는 당정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국민 여론을 제대로 전달하는 '레드팀'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나 의원은 자신이 계파색이 옅다는 점을 드러내며 "당정동행, 밀어주고 끌어주며 같이 갈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전 위원장은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쇄신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당이나 정이 민심과 다른 길을 가면 한쪽에서 견고하고 단호하게 민심의 길로 견인해야 한다"며 "당이 정부와 충실히 협력하지만, 꼭 필요할 땐 합리적 견제와 비판, 수정 제안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히 당대표가 되면 여당 차원에서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을 지명하는 식의 채상병 특검법 발의를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채상병 사건을 언급하면서 "집권 여당과 정부가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현재 기준 한 전 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 예측하면서, "윤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 전 위원장과도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일 것"이라며, 한 전 위원장이 선출될 경우 향후 여야 협치와 당정 관계가 고차 방정식으로 흘러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