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당헌·당규 개정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원내 선거에도 권리당원 의사를 반영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논란이 인 데 이어 당대표 사퇴시한에 예외 규정을 두는 조항 신설에도 점차 반발이 터져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맞춤형 개정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친명계(친이재명)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번 개정이 내부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감지된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 대표는 관련 조항 삭제를 직접 제안했으나 당무위원들은 이를 확정됐다.
민주당은 12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당규 개정 및 당헌 개정안 발의 건을 원안대로 가결했다. 오는 17일 열릴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치면 개정안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개정안 신·구 조문대비표에 따르면 국회의장단 후보자 및 원내대표 선출에 당원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권리당원 유효투표 결과를 반영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기존에는 재적의원 의견만 반영해 과반수 득표로 선출했는데 이를 80%로 낮추고 권리당원 의사를 20%를 넣는다는 계획이다. 권리당원 투표는 ARS나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결선투표에도 똑같은 비율로 적용된다.
이같은 방안은 국회의장 후보 경선 이후 강성 당원들의 반발에 따른 조치다. 6선의 추미애 의원이 최근 치러진 의장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고, 5선의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자 추 의원을 강력 지지하던 이들은 릴레이 탈당 행렬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친명계 지도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한 전략으로 당원권 강화 카드를 꺼낸 바 있다.
당은 우선 시·도당위원장 선출에서도 권리당원 의사 반영 비율을 늘리기로 했다. 현재는 권리당원과 대의원의 반영 비율을 50대 50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20대 1 미만으로 두기로 했다. 시·도당위원장이 지방선거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권리당원들이 이들 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차원이다. 당원들이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현행 민원국을 당원주권국으로 확대 재편하고, 전국대의원대회를 전국당원대회로 명칭을 개정하는 내용도 확정됐다.
당대표나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도 당무위 결정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 또는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 의결로 당대표 및 최고위원의 사퇴 시한을 달리 정할 수 있게 했고, 중앙당선거관리위원회 구성되기 전까지만 사퇴하면 된다. 또 당직자가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을 경우 기소와 동시에 직무를 정지한다는 조항도 삭제했다. 대신 각급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당원권 강화를 위해 원내 선거에도 권리당원을 참여시키는 것을 두고는 당내에서도 이미 한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당 의원들도 대체로 당원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의장 선거에까지 이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이 옳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왔다. 당심과 민심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데도 국민을 대표하는 의장 선출에까지 당원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당 일각에서 나왔다. 그러나 당의 권리당원수가 250만명에 해당하는 만큼 이들의 의견이 어느정도 민의를 대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권리당원 비중 확대에 우려는 일부 있었던 것이 맞지만, 친명계 다수가 원내를 장악한 상황이기에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나 지도부가 당대표 사퇴시한까지 손을 대자 여기저기서 반발이 표출되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표의 대선 출마를 위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데다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토의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같은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이 대표는 2026년 6월 열릴 지방선거에까지 당대표로 영향력을 행사한 뒤 2027년 3월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
이 대표의 최측근 그룹인 '7인회' 소속인 김영진 의원은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의원들이나 당원들, 그리고 다른 목소리에 대한 충분한 의사 수렴이 없이 급하고, 과하게 의결됐다. 우려가 크다. 과연 '이 의사결정 과정이 민주주의적이었나'라는 의문이 있다"라며 "참외밭에서 신발 바꿔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 고쳐 쓰지 마라, 이런 말이 있다. 굳이 오해를 살 일을 왜 하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탐대실"이라며 "이 대표만을 위해 민주당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페이스북에 "1년 전 당권·대권 분리 예외 조항은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특정인 맞춤 개정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왜 하필 지금인지 모르겠다"며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 누구의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 민주당이 돼야 한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개정 작업이 민주당의 중도층 확장에 한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소탐대실이라고 본다. 민주당은 수권 정당이 되길 원하고, 이재명 대표도 대권을 원할 것인데 (이런 방향으로 당헌·당규가 개정된다면) 절대 중도를 수용할 수 없다고 본다. 대선은 5%P 이내에서 승패가 갈리는데 이런 조항으로 합리적 중도를 데려올 수 있겠는가"라며 "(당 귀책 사유로 재보궐 선거 시 무공천 규정의 경우) 김상곤 혁신위가 만든 안인데 이제 와서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정치는 진화하고 진보해야 하지 퇴보하면 안 된다. 길게 봐야 한다. 대선에서 후보로 지명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선에서 승리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당무위 후 기자들과 만난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당대표 사퇴 시한과 관련한 개정에 수정이 일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다수의 당무위원들이 원안 의결을 원해서 의견을 개진했던 위원들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표는 '사퇴 시한 관련 조항을 빼고 가자'는 제안을 했지만 부의된 안을 따르기로 결정됐다고 한다.
이 수석대변인은 "대표께서 공식적으로 최고위원들께 다시 토론하자고 두 번이나 요청할 정도로 당무위에서 심도 깊은 토론이 있었다. 문제제기했던 당무위원들도 모두 수긍했다"라고 강조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반대를 많이 해서 설득에 시간이 걸렸다. 개정이 대표를 위한 게 아닌데 해당 조항에는 예외가 없어 보완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