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북한 오물 풍선에 맞선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사실상 정부 용인 아래 이뤄지면서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 시 100배 보복'이라는 북한의 위협에도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근거로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지 않았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와 대북전단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 도발을 감내할 만큼의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또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등 남북 군사적 충돌의 완충 지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 수위는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정부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6일 새벽 탈북민 단체는 대북전단 20만장을 살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드벌룬 10개에 나눠 담긴 대북전단에는 한국 가요 등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와 1달러 지폐가 포함됐다.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지난달 28~29일, 지난 1~2일 걸쳐 이뤄진 북한의 오물 풍선 직후 이뤄졌던 까닭에 주목을 받았다. 당시 북한이 오물 풍선을 잠정 중단하며 그 조건으로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언급해서다.
북한은 대북전단 발견 시 100배의 보복을 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대북전단 살포는 단행됐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이 북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배경은 '제지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통일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이 확인된 이튿날인 지난 3일 대북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할 것인지에 대해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중단 전제 조건인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가 언급한 표현의 자유는 지난해 9월 헌재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규정한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을 뜻한다. 당시 헌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매우 중대하다며 관련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대북전단 살포 과정에서 경찰의 제지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통일부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이 북쪽으로 살포된 지난 7일 '국민 생명 등의 위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이같은 상황에서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입장'에 "입장 변동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도 민간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확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 동시에 남북 긴장 관계 역시 고조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북전단이 남북 대치를 담보로 할 만큼의 효과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대북전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관료를 자극시켜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과가 있겠지만, 북한 주민과 군인들이 체제의 염증을 느껴 우리 측을 동경하고 북한 당국에 저항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효력은 0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국책연구기관에서도 대북전단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통일연구원은 지난 2021년 '민간 대북전단의 목적과 효과 연구'를 통해 "민간 단체들이 살포하는 대북전단의 목적이 '정보 유입을 통한 인지부조화 상태의 유발과 이로 인한 체제 저항적 행동 변화'라고 한다면 목표 청중은 일반 대중이 아닌 정치 엘리트 계층에 한정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엘리트 계층의 인지부조화 상태를 유발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 행동 변화에 나설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다"며 "엘리트 계층은 현행 북한 사회에서의 기득권과 경제적 보상을 누리고자 정권 유지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지난 4일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이 전면 중지되면서 지상, 공중, 해상에서의 이른바 '완충 지대'가 사라진 만큼 남북 대치가 더욱 격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양 총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대화가 빠져버리면 '힘에 의한 대결'이 되기 때문에 평화를 만드는 것과 평화를 지키는 것의 균형 정책을 펴야 한다"며 "국방력과 한미동맹 강화가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대화와 교류 협력은 평화를 만드는 것이기에 평화를 지키려고만 하지 말고 만드는 것도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