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가 폐원을 앞두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여대야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도 여소야대 국면 속에 거대 양당의 지속적인 정쟁으로 얼룩졌다. 임기 끝까지 국민을 실망시켰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다. 22대 국회는 타협과 양보의 정신에 입각하는 새로운 국회상을 보여줘야 할 때다. 새출발하는 국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지난 국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되짚어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김세정·설상미 기자] 21대 국회가 4년의 임기를 끝으로 종료된다. 야당의 입법 강행에 맞선 대통령의 계속된 거부권 행사로 여야 협치는 사라졌다. 국민을 위한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나 '역대 최저 법안처리율'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나라 살림을 위한 예산안 처리 역시 첫해를 제외하곤 매번 늑장 처리됐다. 21대 국회를 반면교사 삼아 22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로 변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시작부터 난망한 모습이다. 원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어 이번에도 지각 개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다운 정치'가 실종됐다는 평가와 더불어 매번 뒤늦은 법안 처리와 합의로 국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받는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2020년 5월 30일 시작된 21대 국회는 29일 임기를 마무리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3년 차에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수를 얻었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103석에 그쳤다. 거대 야당이 임대차3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 법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전반기 국회 여야의 대치는 극에 달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협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모습이었다. 양곡관리법부터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이태원참사특별법, 쌍특검법에 이어 해병대원 특검법까지 민주당은 대여 압박 수위를 높였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의 정쟁 속에서 민생법안은 주목받지 못했다. 예금자보호법 개정안과 고준위방폐물법, 모성보호3법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선 총 2만5874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9062건만 법률에 반영돼 35% 비율에 그쳤다. 폐기되거나 철회된 법안은 391건이었다. 20대의 경우 접수된 법안 2만4141건 중 8799건(36.4%), 19대는 1만7822건 중 7429건(41.7%)이 법률에 반영됐다. 역대 최악의 '동물 국회'라는 오점을 남겼던 20대 국회보다 21대 국회의 법안 처리 비율이 낮은 것이다.
◆여야 정쟁에…나라살림 처리도 뒷전
예산안 처리 역시 21대 임기 첫해인 2020년을 제외하곤 내내 법정시한을 넘겼다. 예산안은 정부가 회계연도 개시일(1월1일)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심사 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해야 한다. 이에 따라 매년 12월 2일까지는 국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2020년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로 여야는 재난지원금과 백신 확보에 필요한 예산 각각 3조원과 9000억원을 우선 증액해 반영했다.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여야가 6년 만에 법정 시한을 지키게 됐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3년간 법정시한을 넘기게 됐다. 2021년 여야는 해군의 경항공모함 사업 예산 등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민주당 단독으로 예산안이 상정돼 법정시한을 하루 넘기고서야 처리됐다. 윤석열 정부가 막 출범한 2022년에는 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으로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에 실패했다. 당시는 이태원 참사 이후 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던 시점으로 여야 대치가 극에 달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비롯해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 법인세 인하 등을 둘러싸고 선명한 입장차를 보여오던 여야는 기한을 3주 넘긴 12월 22일에서야 합의안을 도출해 냈다.
윤석열 정부 2년 차에 접어든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부터 쌍특검법 등이 정국을 뒤덮은 시기로 R&D 예산과 새만금 관련 예산이 각각 6000억원, 3000억원씩 순증됐고,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도 각각 3000억원이 편성되면서 656조6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이 12월 21일 통과됐다. 법정 시한을 19일이나 넘긴 시점으로 마지막까지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예산안 처리가 협상의 공간이 아니라 대치의 공간이 돼버렸다. 한마디로 정치의 실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모든 이슈가 대치되면서 정치가 실종되다 보니까 각종 법안이나 긴급 현안, 예산안까지 제때 처리를 못 하다가 마지못해 막판에 타협점을 찾아 통과되는 방식이 반복된다.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원 구성도 줄다리기 여전…22대 달라질까
원 구성 역시 여야가 매번 협의에 이르지 못하는 지점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임기 개시 후 7일째 되는 날에 첫 임시회를 열고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로부터 3일 안에 상임위원장을 뽑아야 하므로 내달 5일에 22대 첫 본회의가 열린 후 7일까지 원 구성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신경전으로 인해 국회가 제날짜에 제대로 문을 연 적은 거의 없다.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부분으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국민의당 등 3곳의 원내교섭단체로 출발한 20대 국회의 경우 법정 시한을 넘기긴 했으나 여야가 원 구성에 극적 합의하면서 비교적 이른 시점에 개원식을 열었다. 당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 법정 시한은 각각 2016년 6월 7일, 9일이었는데 의장단 선출은 9일에, 상임위원장 선출은 13일에 하게 됐다. 시한을 넘기긴 했으나 1994년 이같은 규정이 생긴 이래로 가장 이른 시일 안에 원 구성을 마무리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다만 20대 후반기 국회의 경우 2018년 6월 13일 열린 지방선거 준비와 수습 등으로 인해 협상이 계속 늦춰지며 개원 40일이 지나서야 지각 출범하게 됐다.
21대 국회 개원식은 임기 시작 후 47일 만인 2020년 7월 16일 열렸다. 1987년 개헌 이후 역대 최장 지각 기록으로 꼽힌다. 2020년 5월 30일 21대 임기를 시작했지만 여야는 원 구성 협상을 두고 극단적 경쟁을 펼쳤다. 압도적 의석수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여야는 임기 내내 극한의 평행선을 달렸다. 2022년 하반기 원 구성 협상 당시에도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법제사법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주기로 하면서 전반기 국회 종료 54일 만에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계속된 지각에 피해는 국민에게…"법사위원장 권한 줄여야" 지적도
22대의 원 구성 역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확보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의장은 원내 제1당이,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맡아 온 것이 관례"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어 기싸움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개원이 미뤄지는 만큼 국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국민들이 충분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가) 강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평론가도 "기본적으로 원구성 협상이 어려울 것이다. 국민만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임기마다 개원이 늦어지는 배경으로 법사위원장의 권한을 지목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회법 86조 1항에 따라 신속처리안건을 제외한 모든 법안은 본회의 상정 전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일종의 최종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법사위원장은 특정 법안을 가로막을 수도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돼 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개원 때마다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서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법사위원장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법제실로 이관해야 한다"라며 "국민들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회의를 안 여는 날짜만큼 세비를 삭감한다던가 등의 '일하는 국회' 법안 논의도 이뤄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오유진 간사도 "원 구성이 매번 늦어지는 이유는 법사위원장의 막강한 권한과 연관돼 있다"며 "법사위를 해체하고 사법위원회로 변경하는 방안이 늑장 개원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