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협력 '정상 궤도' 복귀?…FTA 협상 재시동, '비핵화 합의' 불발  


4년5개월 만 개최…"한일중 협력체제 정상화"
'3국 FTA 가속화 논의' 명시
북중러 관계 속 中 입장 변화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3국 정상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협상 논의의 속도를 내기로 했다.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4년 5개월 만에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3국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논의에 속도를 내기로 뜻을 모았다. 한국과 일본이 공을 들였던 '한반도 비핵화 공통 목표'라는 표현은 3국 공동선언에 담기지 못했다. 3국 협의체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미중 갈등 속 외교안보 분야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이날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를 열었다.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제8차 회의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그동안 코로나19와 한일 관계 경색, 미중 갈등 등의 이유로 정상회의 개최가 열리지 않았다.

긴 공백을 깨고 마주 앉은 정상들은 이번 회의 개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자고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늘을 기점으로 3국 정상회의는 정상화되었고,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한일중 협력체제가 앞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3국 프로세스의 재활성화를 확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했고, 리 총리도 "지난 4년 간의 중한일 협력은 코로나19 등 다중 요인으로 정체됐고 이제 겨우 정상 궤도로 복귀됐다"고 환영했다.

이들 정상은 회의 결과를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8차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에서 연설하고 있다. 한중일 FTA가 체결될 경우 이미 출범한 RCEP와 함께 최대 지역경제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3국 간 견해 차로 협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뉴시스

교역과 투자를 늘리기 위해 3국 FTA 협상 논의 가속화를 언급한 점이 주요 성과로 꼽힌다. 3국은 공동선언에 "고유의 가치를 지닌, 자유롭고 공정하며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상호 호혜적인 FTA 실현을 목표로 하는 3국 FTA의 협상 속도를 높이기 위한 논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정상회의 후 참석한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 기조연설에서 "2019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FTA 협상을 조속히 재개해 경제협력 기반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중일 FTA 협상은 2012년 11월 제5차 3국 정상회의에서 FTA 출범 협상 개시를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첫 번째 3국 FTA 협상이 2013년 3월 열렸지만 지정학적 갈등, 역사 문제, 영토 분쟁 등의 이유로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2020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과 3국, 호주와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RCEP 협상 성과를 토대로 3국 FTA 협상 속도를 높이고 전면적이며 상호 호혜적이고 가치 있는 자유무역 협정 체결을 하자는 게 3국 협상의 방향이다. 3국 FTA가 실현될 경우 동북아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최대 규모의 지역경제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산업망·공급망이 재편될 수 있다.

한일중 3국만 보더라도 세계 인구의 20%, 세계 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역내 경제 발전 목표 입장차, 3국 산업구조의 유사성, 산업 경쟁력 상의 격차 등의 문제로 좀처럼 협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이 격해지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이 밀착하면서 대중 관계는 멀어졌다. 대중 무역 수지도 직격탄을 맞아 연속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3국이 FTA 협상 추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속도를 높이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이날 공동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공동선언에는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우리의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하기로 한다"는 내용만 담겼다.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해 대화와 외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이 중요하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담기지 못했다. 대신 한반도 비핵화(한국), 역내 평화와 안정(중국), 납치자 문제(일본)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강조했다.

2019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가 3국 공동의 목표임을 재천명했다"고 합의한 것과 대조된다. 앞서 6차, 7차 정상회의에서도 한반도의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등이 충실히 이행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었다. 지난 4년 사이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한미일이 밀착하면서 중국의 북한 핵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윤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이날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합의는 담기지 못했다. 대신 윤 대통령은 리 총리에게 북핵 문제 협조를 요청했고 리 총리는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답했다. /대통령실 제공

공동 선언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중국 측에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리 총리와 별도 환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글로벌 핵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중국이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정세 안정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소통해 나가자"고 했다.

북중러가 밀착 구도를 형성하면서 중국이 북한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한·일·중 정상회의를 앞둔 이날도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통보하며 압박했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중국센터장은 이번 9차 3국 정상회의 개최에 대해 "수확이 별로 없다. 별로 진전이 없다"고 총평했다. 이 센터장은 "중국이 일단 대화에 나온 건 인정할 만하지만 체면치레로 나온 것 같다"며 "성과가 있다면 한중 간 FTA 2단계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과 한중일 FTA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라고 꼽았다.

이어 "한반도 비핵화가 (공동선언에) 나오지 않은 건 중국이 북한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밀착하는 단계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공식화 해버릴 수 없다. 중국이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 북한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이 변화된 건 없다.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의 안정을 주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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