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상빈 기자] 정부가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검토했다가 지적이 일자 진화에 나섰다.
얼마 전 국가통합인증(KC) 마크 유무로 해외 직접구매(직구)를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가 입장을 번복하는 홍역을 치른 터라 또다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관하는 정부 방침에 비판 여론이 거세다.
정부는 지난 20일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 관계 부처와 합동으로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을 발표했다. 교통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고자 내놓은 정책의 추진 과제 중 '고위험 운전자'에 대한 항목이 주목받았다.
고위험자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하면서 운전 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고 면허 자진 반납을 지원하며 운수 종사자의 자격유지검사 기준을 강화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자격유지검사는 시야각, 주의력, 공간판단력 등이며 65~69세는 3년, 70세 이상은 1년 주기다.
정부는 이 자료에서 "인구 고령화에 따라 고령 운전자 비율이 증가해 그들로 인한 사망자가 지난해 전체 29.2%를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신체·인지 능력을 고려한 고령 운전자 맞춤형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분류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2년 439만 명에서 2023년 475만 명으로 1년 만에 8.2% 증가했다.
'조건부 면허제'는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는 만큼 그들을 대상으로 능력 평가를 거쳐 면허에 제한을 두자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직후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운수업 종사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여권 잠룡'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조건부 면허제'에 반대하는 뜻을 피력했다.
한 전 위원장은 21일 소셜미디어에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도 있지만, 불가피하게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때는 최소한도 내에서 정교해야 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방향이 맞다는 것만으로 좋은 정책이 되지 않는다. 고령 시민들에 대한 운전면허 제한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조건부 면허제'를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에 참여한 경찰청은 발표 하루 만에 참고자료를 내고 특정 연령대를 대상으로 내놓은 정책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경찰청은 "'조건부 면허제'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며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면서 "의료·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혔다. 발표 당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비율 증가를 언급하며 대상을 특정하는 듯하다 여론이 안 좋아지자 '연령 불문'으로 말을 바꾼 것이다.
정책을 발표했다가 여론을 살핀 뒤 해명에 나서거나 백지화하는 정부의 '민심 찔러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16일 정부는 KC 마크가 없는 어린이 제품과 생활용품은 물론, 신고·승인받지 않은 생활화학제품의 해외 직구를 원천 금지하겠다는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발표 사흘 만인 19일 정책 철회 방침을 내놨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시사한 '6월 공매도 재개' 가능성에 대통령실이 시스템을 갖추기 전까지는 재개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 관계 부처와 엇박자가 난 점도 정부의 정책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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