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채해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특검법이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고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해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 수사 결과를 먼저 기다려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채해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해당 안이 의결된 지 약 5시간 만이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거쳐 순직 해병특검 법률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고 했다. 정 비서실장이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관련 브리핑을 연 것은 지난 2일에 이어 두 번째다.
정 실장은 먼저 "이번 특검 법안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권분립은 우리 헌법의 골간을 이루는 대원칙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법치와 인권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이러한 삼권분립 원칙하에서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서 하는 권한이자 기능"이라며 "특검 제도는 그 중대한 예외로서, 입법부의 의사에 따라 특별검사에게 수사와 소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정부 권한의 부여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13차례의 특검법 모두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면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이번 특검 법안은 이처럼 여야가 수십 년간 지켜본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실장은 또 "삼권분립 원칙상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해당 특검법이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만 부여토록 한 데 대해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또 "특검 제도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수사의 공정성 또는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며, 채상병 순직 사건은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 중이므로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실장은 "공수처는 지난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위한 사실상의 상시 특검으로서 일방적으로 설치하였던 수사기관"이라면서 "그런데 지금 공수처의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 부정"이라고 강도 높게 반박했다. 이어 "더욱이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 임명에 동의하면서 한쪽에서는 공수처를 무력화시키는 특검법을 고집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해당 특검법이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에는 대한변호사협회장이 후보 4명을 추천하면 야당이 그중 2명을 고르고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게 돼 있다. 이에 대해 정 실장은 "채상병 사건에서의 외압 의혹은 야당이 고발한 사건이다. 야당이 고발한 사건의 수사 검사를 야당이 고르겠다는 것이다. 입맛에 맞는 결론이 날 때까지 수사를 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구조에서 이 법안에 따른 수사 결과를 공정하다고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언론 브리핑이 가능토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법상 금지된 피의사실 공표를 이 사건에 한해 허용하고 아예 제도화하는 잘못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 여론 재판을 통한 인권 침해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인권 침해를 법으로 강제하는 독소 조항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실장은 "이 밖에도 수사 대상에 의해 과도한 인력 투입으로 표적, 과잉 수사 가능성이 지적된다"며 "야당의 일방적인 특검 법안 강행 처리는 국민과 민생을 위해 당장 절실한 여야 협치의 기대를 머무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채상병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일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채상병의 안타까운 사망은 더 이상 정쟁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재의를 요청했다.
정 실장은 특검법 재의 요구 취지와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故 채수근 상병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야당은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특검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는 질의에 "헌정사에 여야 합의 없이 특검법이 강행 처리된 적은 없고, 그렇게 채택된 특검법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이 법안에 대해 재의 요구를 당연히 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재의 요구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위 관계자는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은 대통령실이 연루돼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대통령이 특검 임명하는 게 맞나'라는 질의에는 "대통령의 외압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 당국이 그 실체적인 진실을 규명해야 될 부분이고, 그런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가정)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여야 합의로 특검법 추진할 가능성이 있나'라는 물음에는 "여야가 합의해 넘어온 특검 법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수용하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채해병 특검법'은 국회로 돌아간다. 재표결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재표결이 부결되면 범야권은 22대 국회에서 '채해병 특검법'을 재발의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