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훈 마넷(Hun Manet) 캄보디아 총리의 정상회담 계기에 양국 정부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정치, 국방과 안보, 인프라건설, 문화, 인적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지원을 기존의 2배인 30억 달러(약 4조 원)까지 늘리고, 캄보디아 현지에 특별경제구역(SEZ)을 조성해 국내 기업의 현지 진출과 양국 교역 확대를 적극 지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이날 오후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에 대해 "1997년에 재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27년간 꾸준히 확대된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이 축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기점으로 정치, 국방, 외교, 경제, 금융, 사회 문화, 기후 변화와 환경 이슈까지 망라한 포괄적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1997년 재수교한 이후 지속적으로 교역 투자와 협력을 확대해 왔지만 그간 양자 간 관계에 대한 별도의 명칭은 없었다.
우선 경제 분야에서 우리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한 EDCF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2년 한-캄보디아 정상회담 계기로 유상원조인 EDCF 지원한도를 기존 7억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확대했는데,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EDCF 기본약정을 갱신해 지원한도를 30억 달러로 2배 더 늘린 것이다. 차관 공여기간도 2026년에서 2030년까지 연장했다. 유상원조를 통해 현지 인프라건설을 지원하고 국내 기업이 수주하는 식의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이와 관련, 대표적인 인프라 차관 사업인 '한-캄보디아 우정의 다리 건설 사업'(2.46억달러 규모)이 내년 말 착공할 예정이다.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네 번째 차관 계약한 '캄보디아 지방도로 개선사업'으로 현지 교통 인프라도 구축할 예정이다. 캄보디아 6개주에 총 391.1km의 지방도로를 개선하고 교량을 건설하는 사업(1.2억달러 규모)이다. 앞서 2022년 12월 발효된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함께 양국 간 교역과 투자 확대 여건이 더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김 1차장은 "이런 비용을 사용해서 우리 기업이 캄보디아의 더 넓은 운동장 안에서 뛰고 또 투자, 개발하고 연구를 통해서 우리의 일자리, 산업 성장에 더 많은 공간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캄보디아는 연간 6%의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다. 동남아의 신흥 주요 협력 파트너국으로서 여러 경제 협력 아젠다를 발굴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EDCF 대폭 확대에 대해 "EDCF는 차관 형식이기 때문에 당장은 우리 돈이 들어가지만 길게 볼 때는 우리 기업의 투자 효과가 있는 중장기적 투자"라며 "기존에 계속돼 오던 인프라 사업도 있지만 앞으로 고부가가치 협력 분야, 디지털, 친환경 녹색기술, 미래 청년 인력 개발 프로그램 등을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깊이 투자하고 협력하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현지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들을 위한 특별경제구역도 설정한다. 김 1차장은 훈 총리가 이날 이같이 제안했다며 "한국의 자동차, 전자 관련 기업들이 활발하게 투자해서 마음껏 캄보디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계획 세워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을 포함해 다른 선진국에도 캄보디아가 비슷한 제안을 해왔는데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느냐는 당사자들과의 협의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주캄보디아한국대사관-개발위원회 간 정례협의체를 신설한다. 특별경제구역 설정 계획과 국내 기업의 현지 진출 여건 개선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캄보디아개발위원회 간 투자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상호 투자 촉진을 위한 정보공유 및 네트워킹을 비롯해 투자협력을 공동연구하기로 했다. 또 지식재산분야 심화 협력 양해각서를 맺어 캄보디아 진출 우리 기업의 상표 등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제협력 분야에선 양국 정상이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했고, 현 정부의 대북 전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훈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에서 캄보디아에 체류하던 북한 노동자를 추방하고 북한 식당을 폐쇄하는 등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또한 캄보디아 측은 현 정부의 지역특화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과, 정부가 올해 하반기 추진 중인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격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은 아세안의 경제구조 전환을 지원하는 동반자로서, 경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과 관련해선 캄보디아 지뢰 제거 지원 사업을 지속하고, 캄보디아 내 국제 평화·안보 증진을 위한 평화유지활동(PKO) 협력을 확대하며, 올해 하반기 한국 해군함정의 캄보디아 기항 계획 관련 양국 간 해군 공동 훈련 실시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이와 함께 마약 밀수, 인신매매, 사이버 범죄, 사기 범죄 등 초국경 범죄 대응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사회·문화 분야에선 캄보디아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 복원 사업 추진 등 문화유산 보존·복원 협력을 강화하고, 캄보디아 예술교육 플랫폼 구축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