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총선백서 특별위원회의에서 다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두려운 존재여서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인물)처럼 이름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총선 패배 책임 소재 대상을 표현했다. 백서에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적시하지 않는다면 구체적 패배 원인 규명이 부족해진다."(22대 총선 서울 지역 국민의힘 낙선자)
국민의힘이 22대 총선 참패 원인을 기록하기 위한 백서 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 내부 기류에 반발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당대표가 사퇴한 걸로 정치적 책임은 봉합하자"며 특정 대상에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백서 작업을 두고 당 내분이 격화되자, 이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총선 패배의 원인은 복합적인데, 구체적으로 책임 소재를 명시하지 않는 건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라는 비판도 나온다.
14일 국민의힘 서울 지역 총선 출마자들은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총선백서 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해 총선 참패 원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에서 보수 정당이 소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48석 중 1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정훈 총선백서특별위원장은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원 구조 변화, 노령화하는 지지층, 그리고 다가가지 못하는 40·50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수도권 인구 구조 변화부터 여의도연구원에 대한 아쉬움, 선거제 개혁까지 당 내·외부적 요인과 관련해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나왔다"고 내부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총선 기간 중에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총선 백서에서 다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며 "당을 (책임의) 주어로 만든다는 게 패배 원인에 대해서 대충 덮고 넘어가자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특정인을 언급하지 않는 백서 작업을 두고 '총선 패배 책임론이 불분명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직설법을 쓰나 은유법을 쓰나 읽는 사람들은 다 해석할 것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 안팎에서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백서 작업에 비토 목소리가 나오자, 특정인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백서 작업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특위는 총선 패인 관련 설문조사에서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문항을 포함시키면서 지지자들로부터 몰매를 맞은 바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의 메시지와 지원유세는 선거에 도움이 되었느냐', '비상대책위원장의 원톱 체제가 민주당의 3톱 체제보다 선거운동에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느냐' 식의 질문으로, 한 전 위원장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한동훈 죽이기"라는 성토가 터져나왔다.
총선 참패 책임 소재를 두고 한 전 위원장과 대통령실의 갈등으로 비화되자, 특정인을 규명하지 않는 방식의 백서를 만들자는 의견으로 모이고 있다. 황 위원장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개인의 책임을 추궁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당 대표가 사퇴한 것으로 정치적 책임은 봉합하자"며 "주어는 당으로 해서, 당이 이런 문제가 있고,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해야 당이 받아들일 수 있고 해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동 서울시당 위원장 역시 "이번 백서가 누구 책임이란 것을 규명하고 부각하기보다 우리당이 이길 수 있는 틀을 갖추는 당으로 변모하는 백서가 되길 건의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특정인을 거론하지 않는 백서를 두고 패배 원인 규명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험지에서 출마한 한 국민의힘 낙선자는 "황 위원장께서 '한 위원장의 사퇴한 것으로 정치적 책임은 봉합하자'고 했는데, 한 위원장이 희생한 것으로 이 상황이 봉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총선 패배의 원인은 복합적인데, 오늘 회의에 참석한 분들 중에 대통령실과 한 전 위원장 등에게 분명히 책임이나 문제가 있다는 것에 노골적으로 비토한 분은 한 명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구체적인 총선 패배 규명이 부족해지는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비판에 동의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