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대한민국 국회는 인간의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 폭염, 한파, 태풍, 대형 산불 등 기후재난이 증가하고 불균등한 피해가 발생하는 현재의 상황을 '기후위기'로 엄중히 인식하고, 기후위기의 적극적 해결을 위하여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언한다."
21대 국회는 2020년 9월 본회의을 열어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입법부가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현 상황을 기후위기 비상 상황이라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결의안을 통해 중장기적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과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적극적인 입법을 다짐했다. 또한 기후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수립에도 긴밀히 협조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잦은 기후재난을 불러오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4월 평균기온이 14.9℃로 집계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폭우에 따른 인명 피해와 농작물 수해 등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21대 국회도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관련한 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화에 노력해왔다.
일례로 국회는 지난해 10월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률안'을 처리했다. 법안은 기상청이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기후위기 감시 및 예측 업무를 총괄하며 범정부 합동 기후변화 감시·예측 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올해 10월부터 법이 시행된다면 기후 감시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 효과 검증과 정밀한 예측으로 기후변화의 정보를 정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정치권은 예상했다.
당시 이른바 '물순환촉진법'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수도·하수도·지하수 및 하천 등 분야별 법률에 따라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물 관리 시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고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인한 재해와 물 부족 악화 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2021년 8월에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설치 등 기후위기 대응 체제를 정비하는 내용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도 통과됐다.
이외에도 여러 법안이 이번 국회에서 처리됐다. 각 기업에 거의 무상으로 할당되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유상할당으로 변경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법', 탄소 포집·저장·활용(CCSU) 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법', 온실가스를 50% 줄이는 등 탄소사회의 대전환과 불평등 해소 내용이 담긴 '그린뉴딜정책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환경 개선과 관련한 자원순환법, 하천법 등도 통과됐다.
하지만 큰 틀에서 기후위기와 환경에 관한 상당수 법안이 폐기되는 수순이다. 이 법안들은 오는 29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다. 지난해 8월 발의된 '석탄발전사업철회 및 신규 허가 금지법'(일명 탈석탄법)도 그중 하나다. 2022년 9월 시민 5만 명 동의로 국회에 회부된 탈석탄법은 강원 삼척 등에서 건설되는 석탄발전사업을 빠르게 중단하고, 사업자 보상과 노동자 지원 내용을 담고 있는데, 현재까지 심사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박수홍 녹색연합 활동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시민 5만 명이 신규로 지어지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라는 민의를 국회 청원에 담았고, 그 영향으로 공당(류호정 당시 정의당 의원)에서 발의한 법안에 대해 지금까지 국회가 손 놓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라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제대로 안건으로 다루지 않았다. 본회의에 한번 안건으로 올랐어도 문건상 안건으로 올라간 것이지 주요하게 다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탄소세법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과 기후변화대책 마련 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탄소세 제도 신설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2022년 12월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22대 총선 기후 공약으로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탄소세 도입 등 에너지세제를 탄소세제로 개편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했었다.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탄소중립법',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와 녹색건축물 전환 등 이행실적을 정부업무평가에 반영하는 내용의 '탄소중립 기본법'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대기, 토양, 하천, 저공해자동차 등 환경과 관련한 법안은 물론 기재위, 산자위, 농해수위 등 여러 상임위에 머문 여러 법안들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물론 일부 비슷한 취지의 찍어내기식 법안이 있지만, 심사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사실이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은 통화에서 "탄소중립기본법에 담긴 내용이 기후위기를 대응하기에 매우 불충분하기에 결국 헌법소원까지 간 부분들을 보면 21대 국회가 사실상 탄소중립을 강조했지만 실질적인 계획과 정책들을 만들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실한 기후 위기 대응으로 국민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기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2020년 3월 정부가 기업의 이익 추구를 국민의 건강권을 우선하는 등 제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지난달 23일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박 활동가도 "21대 국회에서 기후위기 결의안 등 과거보다 전향적인 결정 등이 나온 것은 맞지만 국제사회의 합의 기준이나 과학계의 경고 수준에 비해 한참 못미치는 수준의 입법도 사실"이라며 "실질적으로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석탄발전 폐쇄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사실상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줄여 1.5도 경로로 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21대 국회가 놓쳤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8년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서 지구 환경의 파국을 막으려면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 수준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 0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지난달 22일 기후위기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국회 경내에 기후위기시계를 설치했다.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시계인데, 지난 7일 오후 기준 현재 남은 시간은 약 5년 2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