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합니다."(2024년 1월 1일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이른바 '3대(노동, 교육, 연금) 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다. 미래 세대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득권 카르텔을 혁파하는 대대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구상이 깔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할 때마다 '3대 개혁'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올해부터는 의료개혁까지 더해 4대 개혁 과제를 안고 있다. 노사 법치주의 확립, 늘봄학교 전면 확대, 연금개혁 의견 수렴, 의대 증원 추진 등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년간 거야(巨野)의 벽에 막혔고,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해 개혁에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다.
22대 총선 참패로 입법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게 됐고, 국정 지지율이 30%대 초반에 머물면서 남은 임기 동안 4대 개혁 과제 추진에는 더 큰 난항이 예상된다. 야당과의 협치를 복원하고 4개 대혁에 대한 국민과의 소통 확대 등 적극적인 노력과 행보가 필수가 됐다.
3대 개혁 중 '노동'은 윤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꼽은 분야다. 윤 대통령은 취임한 해인 2022년 12월 3대 개혁을 주제로 청년층과 간담회를 갖고 "3대 개혁 중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노동개혁"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노동의 유연성, 공정성, 안전성을 높이는 것을 개혁의 핵심이라고 강조해왔다. 윤 정부 출범 이후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근로시간 유연화 △성과 중심 임금 체계 개편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적용 등 사각지대 해소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한 고용정책 강화 방안 등의 밑그림을 그렸다.
'노사 관계 법치주의 확립'은 성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노조의 불법파업에 강경 대응해왔다. 2022년 12월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페지화 확대적용'을 요구한 화물연대의 운송 파업 당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등 정면 돌파했고, 이 외에도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고용 세습 및 불공정 채용관행 근절을 주문했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조합비 사용 내역을 은폐하는 노조에 과태료 부과와 현장 조사를 실시하는 등 강경 조치했고, 조합원 1000명 이상 노동조합의 회계를 공시하도록 했다. 노조 내 고용세습 등 불법적인 단체협약은 시정조치 했다.
하지만 입법이 뒷받침이 되지 않아 구체적인 성과는 미흡한 수준이다. 근로시간제 개편은 '주 69시간제'를 발표했다가 여론 반발로 철회한 이후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주 52시간제(법정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를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하더라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세습 기득권 철폐를 위한 공정채용법 개정안도 국회에 잠들어 있다.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제자리걸음이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나 고용 안전망 강화 등에선 사실상 진전이 없다. 4차 산업혁명 및 지역소멸, 저출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 제도 개선 과제도 손 놓고 있다. 직무 내용과 성과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선은 민감한 이슈인 만큼 공공부문 우선 도입을 논의하는 데 그쳤다.
지난 7일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노동·사회정책 평가' 토론회에서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노동정책의 우선과제로 내세웠지만 전반적인 경제정책이 사용자와 부유층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전무했다"고 평가했다. 노동계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청하는 비정규 하청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 행사를 불법화하고 억제하는 정부 기조가 노동 취약계층 보호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120대 국정과제 세부 내용으로 '산업재해 예방 강화와 기업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지원'이 명시돼 있지만, 정작 윤 대통령이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에 반대하고,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남용을 막는 '노란봉투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노사정 대화로 노동개혁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실상 유일한 근로자 대표인 한국노총이 '공무원·교원노조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 제도) 논의에 반발해 대화에 다시 불참하며 경사노위의 정상 가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교육 개혁에도 고삐를 쥐었다. 윤 정부의 교육개혁은 국가교육책임제 강화,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지역혁신 중심대학 지원체계 구축, 첨단분야 인재양성, 창의와 다양성 교육 등이 골자다. 임기 초반 교육부가 설익은 '만 5살 입학' 학제 개편을 꺼냈다가 여론 뭇매를 맞으면서 개혁 작업이 더디게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올해부터 국가교육책임제의 핵심 정책으로 '늘봄학교'를 띄웠다. 전면 시행을 올해 2학기로 1년 앞당기고 일일교사를 자처했다. 0세부터 5세까지 영유아 교육과 보육 체계를 일원화하는 '유보통합'은 내년부터 전면 시행 예정이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속도전으로 교수 업무 부담 과중, 공간·인력 부족 등 문제가 발생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수능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지난해 6월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폐지 방침으로 이어졌고, 학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는 교육 당국과 입시 업체 간 유착을 해소했다고 자평한다. 이 외에 교권 보호 4법 개정을 통한 교권 회복, 고등 교육 권한 지역 이양 등을 성과로 꼽는다.
교육부는 지난해 연말 내신 상대평가 5등급제 시행, 수학능력 시험에서 심화수학 제외 등을 핵심으로 하는 2028년 대입 제도 개편안도 내놨는데,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와 고교 내신 상대평가제가 충돌한다는 우려가 있다. 높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환경이 유지되면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 확대 정책이 무의미해졌고 사교육 의존도는 여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금개혁 과제의 시급성은 정부와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다. 2023년 국민염금 제5차 재정추산 결과에 따르면 연금기금은 31년 뒤인 2055년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윤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는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시동을 걸어야 한다", "연금 개혁은 최소 50년 이상,지속 운용되어야 하는 체계인 만큼 하루, 이틀 안에 성급하게 다루기보다 우리 정부에서 반드시 그 골격과 합의를 도출해낼 것"이라며 소극적으로 접근했다. 이후 정부가 연금개혁 방향 관련 연금 재정에 관한 과학적 조사·연구, 국민 의견 수렴과 공론화 작업을 거쳐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회에 합의안 도출과 공론화 책임을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을 넘겨받은 여야는 연금개혁의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데는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에선 각각 43%, 45% 상향하는 안이 대립해 2%포인트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연금 개혁 논의가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되면서, 특위 구성 등 본격적인 논의 재개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예정이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연금학회장)은 <더팩트>에 "(소득대체율) 2% 포인트 차이니까 44%로 해도 될 텐데 그것 때문에 (합의가) 안 됐다는 게 이해가 안 가고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다. (정부가) 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었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합의가) 안 된 이유는 보험료율 인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때도 그랬다. 기업 반대로 보험료율을 올리기가 상당히 어렵다면,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을 올리는 방안으로 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 분야는 과제 실현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다. 의료개혁은 윤 대통령이 지난 2월 정부의 '의료개혁 4대 정책패키지'를 직접 밝히면서 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방침'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두 달 넘게 갈등을 겪고 있다. 정부는 초반부터 '2025년부터 2000명, 2035년까지 1만 명' 방침을 고수하고 의료계 집단행동에 초강경 대응 기조를 보였다. 다만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계 혼란과 국민 피로감이 커지자 2025학년도에 한해 국립대 의과대학 정원에 대한 대학 재량권 행사를 허용키로 하면서 사실상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당초 계획보다 500명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전공의, 의대 교수들은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의 전문의 취득이 1년씩 지연되고 집단 휴학 중인 의대생이 유급되는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의료 현장 혼란은 훨씬 커질 전망이다. 갈등 관리 실패 책임에 따른 후폭풍이 거셀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야당으로부터 정책 공감을 얻고 협력을 구한 상태다. 야권이 주장하는 공공 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수용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에 협조를 구한다면 의료개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년간 윤 정부의 국정과제 추진을 두고 여당 내에서도 자성이 나왔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윤상현 의원은 지난 7일 '윤석열 정부 2년 성과와 과제 세미나'를 열고 "국정운영 방향은 옳았지만 방식이나 스타일이 거칠고 투박했고 일방통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자리에 함께한 윤창현 의원도 정부의 정책방향에는 전폭 지지한다면서도 "문제는 방식의 문제, 포장의 문제, 소통의 문제 이런 것들이 방향과 내용들과 진정성을 훼방 놓는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결국 향후 소통 확대와 야당과의 협치 정상화가 4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윤 정부 개혁 과제의) 목표나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국민 지지를 결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그런 면에서 22대 국회가 출범하면 소통과 공감, 설득, 협치를 통해 개혁 동력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