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국민의힘이 차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를 택했다. 4·10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물러난 지 18일 만이다. 쇄신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황 전 대표는 3주째 내홍이 이어지는 당 분위기 쇄신은 물론 전당대회 룰 개정이라는 난제를 떠안았다.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비공개로 당선인 총회를 열고 황우여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총회 뒤 기자들과 만난 윤 권한대행은 "세 가지 기준을 갖고 비대위원장 후보를 물색했다. 첫 번째는 공정하게 전대를 관리할 수 있는 분, 두 번째는 당과 정치를 잘 아시는 분, 세 번째는 당의 대표로서 덕망과 신망을 얻을 수 있는 분"이라며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당무에 밝으신 분이다. 다양한 이견이 있을 때 잘 조정하고, 중재를 잘하시더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전날 상임전국위를 열고 황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오는 2일 전국위원회를 연 뒤 최종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윤 권한대행은 차기 원내대표를 선출하기 전까지 비대위원장 임명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 선거일은 오는 3일에서 9일로 미뤄졌다.
판사 출신으로 5선 의원을 지낸 황 전 대표는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새누리당 대표, 박근혜 정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등 당내 신망이 두텁다. 하마평에 올랐던 중진 의원들 대부분이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하는 구인난 끝에 보수 원로를 고른 셈인데 모험 대신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다. 당선자들 사이에서도 황 전 대표 지명에 대해 큰 반발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안철수 의원은 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무난한 인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합리적인 분"이라면서도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받들고 혁신과 쇄신의 그림을 그려나갈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비대위 임기는 약 두 달 정도다. 이르면 오는 6월 열리는 차기 전당대회를 조속히 준비하는 관리형 비대위 임무에 집중할 전망이다. 황 전 대표의 최대 난제는 전당대회 룰 개정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전당대회 규칙은 당원 투표 100% 방식인데 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도권 의원들과 비윤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당원 의견과 일반 국민 여론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친윤계는 현행 비율을 유지하자는 입장이라서 룰 개정 여부를 두고 당내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더팩트>에 "수도권에 기반이 있으면서 계파색이 없는 황 전 대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전대 룰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이번 선거를 통해 당심이 민심이라는 것이 틀렸다는 게 입증됐다. 두 달 동안 황 전 대표가 얼마나 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비대위원 인선과 함께 당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도 주어졌다. 당 일각에선 황 전 대표가 수도권 험지의 당선인들은 물론 낙선인들도 비대위원으로 중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형두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황 위원장이 오랜 경륜으로 당 위기 상황을 관리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대위원 구성 때는 정말 비상한 위원들을 모셔야 한다"며 "총선 TF 책임을 맡은 조정훈 의원, 서울 도봉에서 당선된 김재섭 당선인, 수도권에서 석패한 당협위원장을 과감하게 발탁해 총선 패인부터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전날 성사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등에 가려졌던 여당의 존재감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을지도 황우여 비대위의 관심사다. 영수회담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여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 등 정부여당을 상대로 강한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여 거대 야당의 파상공세에 비대위가 어떻게 대응할지 역시 주목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