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한일투자협정 '제16조' 자신감?


'내국인·최혜국 대우' 있지만 상쇄 가능 조항 존재
아직은 법적 구속력 없는 조치…외교적 해결 필요

일본 정부가 라인의 한국 측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한일투자협정의 내국인·최혜국 대우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일본 측에서 이를 상쇄할 만한 조항이 존재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더팩트DB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일본 정부가 메신저 앱 '라인'의 한국 측 지분 매각을 압박하자 한일투자협정의 '내국인·최혜국 대우'에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협정문을 따져보면 일본 측에서 이를 회피할 만한 조항이 존재한다. 현재까지 일본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법적 분쟁이 발발하기 전 외교적 차원에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라인은 일본인 9600만 명이 사용하는 일본의 국민 메신저다. 라인은 지난 2011년 6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NHN재팬을 통해 출시됐고, 2019년 11월 일본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과 합병돼 '라인야후'로 거듭났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지분 절반씩을 보유한 합작법인 'A홀딩스'를 설립해 라인야후의 지분 64.5%를 소유 중이다.

한국의 행정안전부 격인 일본의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라인 고객 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라인야후에 두 차례(지난 3월, 4월) 행정지도를 내렸다. 정보 유출이 네이버 클라우드 해킹으로 발생한 만큼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 등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 측인 소프트뱅크는 네이버의 A홀딩스 주식을 매입하기 위한 협의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일본 정부의 행정조치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한 국가가 자국 내에서 자국 기업과 협력 중인 외국 기업의 지분을 압박하는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관가에서는 일본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이 2003년 체결한 한일투자협정에 기인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협정서에는 한일 양국이 상대국 기업을 상대로 자국 기업에 부여하는 대우보다 불리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내국인·최혜국 대우'가 적시돼 있지만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한일투자협정문 제16조는 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 등을 위해서라면 제11조를 제외한 모든 조항을 건너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일투자협정문 갈무리

한일은 지난 2003년 1월 1일 △양국 간 경제관계 강화를 위한 투자 증진 △투자자에 의한 확대된 투자를 위한 유리한 요건 조성 등을 골자로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투자의 자유화·증진 및 보호를 위한 협정'을 맺은 바 있다. 협정에서 일컫는 투자자는 한일 국적의 개인 또는 법인을 의미하고, 투자는 그 개인 등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통제하는 모든 종류의 자산을 말한다. 이번 사태에 비춰보면 네이버는 투자자, 라인은 투자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일투자협정 제2조는 한 국가에서 활동하는 타국의 투자자, 투자에 대해 내국인대우(NT)와 최혜국대우(MFN)를 명시하고 있다. 이들의 영업활동에 있어 자국을 포함한 제3국의 투자자, 투자에 부여하는 대우보다 불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제16조를 살펴보면 제11조(혁명·반란·소요 등 긴급상황에 따른 보상)를 제외하고, '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위해서라면 내국인·최혜국 대우 등 모든 조항을 건너뛸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일본 국민 80%가 라인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네이버 클라우드 해킹에 따라 사용자들의 정보가 유출된 것을 일본 정부가 '공공질서 침해'로 해석하고, 네이버의 지분 매각이 자국의 '공공질서 회복'이라고 볼 경우 내국인·최혜국 대우는 상실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일 양국 누구도 자국 영역 내 투자자의 투자에 대해 '수용·국유화에 해당하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한일투자협정 제10조 역시 일본 측이 제16조로 반박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이번 사태에서 제10조는 애초에 성립되기 어려운 조항이라는 해석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9일 일본의 네이버 라인 지분 매각 압박에 대해 한국 정부는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임영무 기자

표면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의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은 라인 경영권을 일본 측 소프트뱅크에 넘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10조와 관련된 셈이다. 하지만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동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지분 50%'는 애초에 수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분 50%는 경영권을 수용당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지배적 지분'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사례는 국가 간 분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미국 상무부는 일본산 열연 철강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실시할 당시 조사 대상 기업 KSC에,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관계사 CSI의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KSC는 공동지분권자(50%)의 협조 없이는 자료 제출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상무부는 KSC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며 반덤핑 판정을 내렸지만, 일본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이를 WTO에 제소했고, 해당 쟁점에서 미국은 패소했다. 50% 지분권자는 통제력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현재까지는 일본의 행정지도가 내려진 만큼 네이버의 지분 매각 압박 등에 대해선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해당 사안이 공식적인 법적 다툼으로 확산한다면 한국이 한일투자협정과 관련해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본 정부가 하겠다고 그런다면 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국제 정세상 일본과 협조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너무 이걸 가지고 부딪히기 보다 무리하지 않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실을 통해 "정부는 네이버 측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네이버 측의 요청을 전적으로 존중해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일본의 네이버 라인 지분 매각 압박'에 대해 "한국 정부는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이라며 "네이버 측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필요시 일본 측과도 소통해 나가겠다"고 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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