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대통령실 3기 핵심 인사 교체를 단행했다. 대통령실 정무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방면에서 소통을 활발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새로 임명된 정진석 비서실장은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이후 약속한 '국정 쇄신'을 성공적으로 보좌하고, 여소야대 정치지형에서 남은 3년 임기 동안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를 실현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이번 인선을 두고 여야 안팎에선 '부적절하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신임 비서실장에 '5선 중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정무수석비서관에 홍철호 전 국민의힘 의원을 임명한다고 직접 밝혔다. 총선 직후 지난 11일 "국정을 쇄신하겠다"며 인선 작업에 시동을 건 지 11일 만이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선을 서둘러 마무리한 데는 이번 주 예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조율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의 회담 준비를) 정무수석을 빨리 임명해서 신임 수석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신임 비서실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충청권에 기반을 둔 5선 중진(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 국회부의장, 이명박 청와대 정무수석 등 당과 국회, 행정부 핵심 요직을 지냈다. 홍 신임 정무수석은 유명 프랜차이즈 '굽네치킨'을 창업한 기업경영인 출신으로, 19·20대 재선 의원(경기도 김포)을 역임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선후보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해 유승민계로 분류됐었다.
이번 인사는 '정무·소통 역량'을 최우선 기준으로 두고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1·2기 비서실장을 모두 관료 출신으로 기용하면서 정치 경험이 적은 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적무적 역량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에게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만큼 정무형 비서실장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정 실장에 대해 "우리나라 정계에서도 여야 두루 아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 비서실장으로서 용산 참모진들뿐만이 아니라 내각, 당, 야당, 또 언론과 시민사회 이런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하면서 직무를 잘 수행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년 국정과제를 수립한 데 이어 남은 임기는 정책 실현을 위해 여야를 설득하고 소통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그렇기 때문에 정진석 전 부의장 같은 분을 비서실장으로 제가 모신 거 아니겠나"라고 했다.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의 정계 입문 때부터 현역 의원들을 모아 힘을 실어준 대표적인 친윤계 인사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 호흡도 맞췄다. 정 실장은 "어려운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돕고 또 윤 대통령님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느꼈다"며 (윤 대통령이) "더 소통하시고 통섭하시고 또 통합의 정치를 이끄시는 데 제가 미력이나마 잘 보좌해 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 실장의 첫 번째 과제는 이번 주에 있을 이 대표와의 양자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 회동하는 것은 취임 후 1년 11개월 만으로, 지난 2년 간 불통 이미지를 씻어내고 타협하는 모습을 끌어낼지 주목된다.
회담 전부터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주도권 다툼을 보였다. 민주당은 이날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 회담을 위한 양측 준비 회동이 대통령실의 일방적 통보로 취소됐다고 언론에 공지하고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교체가 임박한 정무수석이 야당 인사와 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란 판단으로 이날 오전 양해를 구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측 유감 표명에 대해 홍 수석은 "반나절 차이 같은데 큰 차이는 아닌 것 같다"며 "(야당 측에) 오늘 바로 연락드려서 내일 바로 그 부분에 대해 연결성을 갖고서 천준호 비서실장을 만나 뵙도록 하겠다"고 했다.
회담에 오를 의제로는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전국민 25만 원 민생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 수석은 회담 의제에 대해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과 1차 한번 만나 뵙고 난 다음에(생각할 문제다.) 그쪽에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조차도 모르는데 제가 답변드리기가 그렇다"고 했다. 천 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영수회담이라는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대통령실의 일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야권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국민 명령을 외면한 인사"라고 비판했다. 정 실장과 윤 대통령의 두터운 친분, 정 실장의 과거 논란이 되는 발언과 사법 리스크 등이 거론됐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 실장과 관련 "친윤 핵심 인사로 그동안 국민의힘이 용산 대통령실의 거수기로 전락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라며 "정 실장 임명은 불통의 국정을 전환하라는 국민 명령을 외면한 인사라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평했다. 이어 "친일 망언으로 시민단체에 최악의 후보로 꼽히며 낙선한 인물"이라며 "비뚤어진 역사관과 인식을 가진 정 실장은 협치 대신 정쟁을 촉발 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실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 법원에서 징역 6개월의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사법 리스크도 향후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 대변인은 "이런 인물을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세우고서 국정 전환과 여야 협치에 나서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일제히 정 실장 인사를 환영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당과 대통령실 관계가 다시 일방통행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특히 정 실장이 당 비대위원장 시절 전당대회 룰을 당원 100%로 변경한 점을 꼬집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이 무너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전당대회로 뽑힌 당 대표를 대통령의 지시로 내쫓은 것과 당심 100%로 전당대회 룰을 급조해 대통령의 사당으로 만든 것"이라며 "지난 2년처럼 일방통행을 고집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출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정 의원을 겨냥해 "당심 100%를 밀어붙인 사람이 정부 실패에 굉장히 큰 책임이 있다. 이런 사리 판단마저도 안 되는 사람이 비서실장이 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