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vol.2-③] 선거 때마다 반복 '참정권' 제약…이젠 끝내야


고령 유권자 따라 달라지는 지역별 선관위 대책
섬 지역, '사전투표 당일' 선박 운행 못한 경우도

초고령화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는 저출생뿐 아니라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역인구소멸 문제를 안고 있다. 지역간, 세대간 불균형·불평등을 초래하는 이런 심각한 사회적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불행스럽게도 지난 제22대 선거 국면에서도 지역간 불등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조차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정보와 이동의 불균형이 뿌리를 깊게 박고 있다. <더팩트>는 4·10 총선 보도기획 [발걸음 vol.2]를 통해 대도시와 소멸위기지역의 선거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초고령화·지역불균형 사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터넷 투표와 임시 기표소 설치가 대안으로 언급되지만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이다. /장윤석 기자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잠정 투표율은 67%로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유권자 4428만11명 중 2965만4450명의 소중한 발걸음이 모여든 결과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표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 투표는 누군가에겐 어려움 없는 행위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의 경우가 그렇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시군구별 선관위는 이들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거 때마다 교통편의 제공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 하지만 이같은 물리적 방안으로는 전체 투표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례로 전국 유인도 가운데 거소(우편을 통한)투표가 가능한 섬은 59개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교통편의 제공만으로는 전체 투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인터넷 투표나 임시 기표소 도입을 주장하지만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번 4·10 총선 과정에서 사전투표일과 본투표 당일 도서·산간에 거주하거나 노약자,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게 교통편의가 제공됐다. 관련 예산은 선거관리경비에서 집행됐으며 일반 차량과 휠체어 탑승 설비 차량, 활동보조인 동행 등이 이뤄졌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의 경우 버스 등 운행 노선이 확대 개편됐고, 인근 투표소까지의 이동을 위해 여객선이 운영됐다. 시도 선관위 이하 급 선관위에서는 관련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 지역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더팩트>가 확인한 17개 시도선관위는 이같은 교통 편의를 공통으로 제공하면서도 지역·연령별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지난 1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12월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와 함께 살펴보면,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과 광역자치단체를 제외한 고령(65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은 경남(67만), 경북(63만), 전남(47만), 충남(45만), 전북(42만) 등에서는 타지역에 비해 버스 노선과 차량이 가장 많이 확대 운영됐다. 해당 지역이 모두 초고령화(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인 점을 미뤄보면 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고령 유권자들이 많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사전투표율을 기준으로 해당 지역 전체 투표율 중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따져보면 경남(40.6%), 경북(47.7%), 전남(46.9%), 충남(40.4%), 전북(43.1%) 등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각 시도선관위에서도 관련 대책을 수립할 때, 교통편의 제공 수단이 그동안의 선거 과정에서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전북 선관위 관계자는 "그동안 선거를 치르면서 이용자 수를 가늠할 수 있고, 데이터에 비례해서 (어느 정도의 교통편의 수단이 제공돼야 하는지) 산출한다"고 말했다.

육지 외에 외딴 섬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은 거소투표를 활용하거나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지만, 모든 투표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거소투표 신고를 할 수 있는 섬은 공직선거관리 규칙에 따라 59개로 제한돼 있다. 선관위는 지난 1994년 22개 섬을 지정한 뒤로, 1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선박이 없는 외딴 섬에 대해 선거인의 신청이 있다면 거소투표 신고를 검토해 규칙을 개정하고 있다. 결국 59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의 경우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개인이 배를 타고 인근 투표소까지 가야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역 선관위에서는 교통 편의 수요를 조사한 뒤에 선박을 제공하지만 여객선 등이 전체 섬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일에도 지역별 격차에 따라 한계가 있었다. 이에 인터넷 투표 도입 등이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새롬 기자

불편한 투표 환경 탓에 사전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안군 선관위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9개 선박이 운영됐지만 사전투표날이 아닌 본투표 당일에만 운행됐다고 한다. 이에 중앙선관위 측은 사전투표는 전국 어디서나 가능하지만 도서·산간 지역의 경우 환경 등에 따라 투표가 어렵다면 시도 단위 재량에 따라 본투표 때만 이동 수단이 제공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 선거 때마다 도서·산간 지역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편치 않은 유권자들은 물리적 환경에 따라 참정권을 제약받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이에 대한 방안 중 하나로 인터넷 투표 도입이 최근까지도 제기되고 있지만 조작과 해킹의 우려 등에 따라 사회적 공감대까지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조작 의심에 따라 선관위는 30년 만에 1만2000명을 동원한 수검표를 실시한 실정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인터넷 투표제도 쟁점과 도입 방향'에 따르면 인터넷 투표제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이와 같은 시스템의 도입은 선거에 참여하는 범위를 확장시키며, 특히 해외나 도서·산간 지역 등 거리가 멀거나 신체적 이유 등으로 투표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제도 도입에 따른 기대 효과와 관련해선 "투표 환경의 공간적 제약을 없애 해외 거주자나 이동이 불편한 사람 등 투표소 접근성이 낮은 유권자들의 투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인터넷 투표까지는 아니더라도 교통약자 등에 대한 투표소 접근 편의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임시 기표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 등을 위해 임시 기표소를 설치하고 투표 절차에 관한 사항을 중앙선관위 규칙에 구체화해 규정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다만 해당 법안은 8개월째 계류 중으로 21대 국회 임기(5월 29일)가 끝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일본, 미국, 호주, 독일 등 선진국이 교통약자 등에 대한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해 이동식 투표소를 설치한 것처럼 오는 22대 국회에서는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기대한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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