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 외교·통일부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르면 다음 주중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오후 윤 대통령과 통화에서 만나자는 제안에 화답했다. 사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통화 전만 하더라도 정국 분위기는 냉랭했다. 국민의힘이 어수선한 내부를 수습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이 깊어지는 동안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은 '채 상병 특검법' 등을 처리하겠다며 연일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앞으로 협치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총선 결과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후 비공개회의 때 "국민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안에서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직에서 물러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지지자들의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한 전 위원장 앞으로 보낸 화환들이 국회 앞길에 줄지어 늘어섰다. 그런 한 전 위원장을 맹비난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윤심'을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인 '개딸'도 이 대표의 연임을 미는 모습이다.
◆참모진만 들은 尹의 사과...대통령실 내부도 "아쉬워"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이 참패한 총선 결과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어.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정책과 현장의 시차를 극복하는데 부족함이 많았다"고 했어. 총선 참패에 대해 직접 말한 건 처음이었어.
-발언 직후 아쉽다는 평가가 나왔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은 옳지만 정책 홍보나 체감 효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는 국민, 야당과의 소통을 더 강화하겠다는데 그쳤기 때문이야. 야당과의 협치 실종,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이종섭 주호주대사 임명 건 등 국민 비판이 컸던 부분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어.
-야당과의 협치에 대해서도 "국회와도 긴밀하게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만 했어. 이번 총선으로 여소야대 지형이 유지되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국정과제를 원활히 추진하려면 야당 협조는 필수야. 그래서 대국민 메시지에서 야당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겠다는 메시지가 담길 줄 기대했는데 아니었던 거지. 또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모두 몇 배로 더 각고의 노력을 하자"라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하는 빙식으로 앞으로의 다짐을 밝혔는데, 이 역시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어. 야당은 "남 탓하는 제3자 화법"이라고 비판했어.
-그러던 중 같은 날 오후 2시 넘어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서 대통령의 추가 메시지를 전했어.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마무리발언과 참모회의에서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정부의 국정운영이 국민들로부터 매서운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고 해. 국민을 향한 사과 메시지인데 대통령이 직접 밝혔으면 어땠을까 싶었어.
-왜 비공개 회의에서 그런 메시지를 낸 거야?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무회의에서 하는 모두발언은 국민에도 전달되지만 장관들에 대한 메시지도 되기 때문에 국정운영에 중점을 두고 발언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했어. 그렇다면 오히려 생중계되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대국민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비공개 발언에서 국무위원을 향한 당부가 중점이 돼야 하지 않았나 싶어. 대통령실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야.
-대통령실은 총선 대국민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방식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해.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도 방안으로 거론됐었어. 다만 전임 대통령들도 참모 회의에서 선거 패배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참고해서 이 방식을 택한 것 같아. 그래도 대통령이 사과할 거라면 공개적으로 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 대통령실 관계자도 사석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그렇게 하는 게 아쉬웠다"고 했어.
-다만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전격 전화 통화를 했어. 윤 대통령은 4분간 통화에서 만남을 제안했고, 이 대표는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화답했어. 2022년 당권을 잡은 이후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영수회담을 제안했는데, 이르면 다음 주에 성사될 가능성이 커. 민생과 관련해 의견을 주고받을 것으로 전망돼. 이를 통해 협치의 물꼬를 텄으면 하는 바람이야.
◆"깜도 안 되는 게" 한동훈 때리는 홍준표…윤심 위한 전략?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연일 날 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며.
-홍 시장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108석밖에 얻지 못한 데는 한 전 위원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야. 한 전 위원장에게 전략이 없었고, 마치 대선에 나간 듯한 착각 속에 선거를 지휘해 참패를 불러왔다고 주장하고 있어.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1일 오전 7시 17분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역대급 참패를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정에서 책임질 사람들은 모두 신속히 정리하자"라고 했어.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것처럼 보여. 또 같은 날엔 대구시청 기자실을 찾아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잘못된 선거였다. 셀카를 찍는 것만 봤지 어떤 전략이 있었는가"라며 "총선이 끝나면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꼴 난다고 예상했다. 그런 사람에게 총선을 총괄 지휘하게 한 국민의힘도 잘못된 집단이다. 깜도 안 되는 것을 데리고 왔다"라고 말했지.
-다음 날인 12일에도 "천신만고 끝에 탄핵의 강을 건너 살아난 이 당을 깜도 안되는 황교안이 들어와 대표놀이 하다가 말아 먹었고, 더 깜도 안되는 한동훈이 들어와 대권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 말아 먹었다"라는 글을 적고 공세 수위를 높였지. 13일에도 "문재인 믿고 그 사냥개가 되어 우리를 그렇게 모질게 짓밟던 사람 데리고 왔는데 배알도 없이 그 밑에서 박수 치는 게 그렇게도 좋더냐"라고 물었어. 홍 시장의 계속된 비판에 '친한파’로 분류되는 김경율 전 비상대책위원은 "저건 강형욱 씨가 답변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어. 홍 시장을 개에 비유한 거지.
-그래도 홍 시장은 멈추지 않고 한 전 위원장을 연일 비판 중이야. 15일엔 "지난해 12월 17일 비대위원장은 선거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하지, 한동훈은 안 된다고 이미 말했다. 그런데도 들어오는 걸 보고 황교안처럼 선거 말아먹고 퇴출될 것으로 봤다"며 "더 이상 그런 쇼는 안 통한다. 다시는 우리 당에 얼씬거리지 마라. 조용히 본인에게 다가올 특검에 대처할 준비나 해라"라는 글을 썼지. 비판 수위가 높아서일까. 해당 글은 금방 삭제됐어.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홍 시장이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와. 한 전 위원장이 총선을 거치면서 용산과 거리가 멀어진 만큼 홍 시장이 그 자리를 파고들어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워지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어. 여당의 대권주자가 되기 위해선 대통령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대통령의 인기가 없더라도 그 의중으로 같은 진영의 차기 유력 주자는 주저앉힐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꽤 있어. 참여정부 시절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던 고건 전 총리가 "실 인사"라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내상을 입었던 게 대표적이야. 국민의힘 내에서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윤심을 얻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본 것일 수 있지. 16일에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이 서울 모처에서 만나 회동을 한 사실도 알려졌지.
-회동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에게 공세를 이어갔어. 18일 페이스북에 "참 소설도 잘 쓰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황태자 행세로 윤 대통령 극렬 지지 세력 중 일부가 지지한 윤 대통령의 그림자였지, 독립 변수가 아니었다"라며 "황교안이 총선 말아 먹고 퇴출됐을 때 그는 당을 1년 이상 지배했어도 뿌리가 없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집권당 총선을 사상 유례없이 말아 먹은 그를 당이 다시 받아들일 공간이 있을까"라고 묻기도 했어. 홍 시장이 때릴수록 한 전 위원장에 대한 동정여론이 커진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에 정치권 구력이 상당한 홍 시장을 정치신인 한 전 위원장이 상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앞으로 여권의 권력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흥미진진하네.
◆국회 앞에 모인 한동훈의 '동료시민'
-한 전 위원장이 총선 다음날인 지난 11일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 열흘이 지났어. 그런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며?
-응. 지난 17일이었어. 국회 앞엔 한 전 위원장을 응원하고 그의 복귀를 바라는 화환 수십 개가 깔렸어. 보낸 사람으로는 '울산 동료시민' 등 한 전 위원장이 강조하던 '동료시민'이 언급됐지.
-행사를 주최한 건 한 전 위원장의 팬클럽인 '위드후니'였어. 화환이 깔린 곳에 빨간색 야구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5~6명 정도 보였는데 가슴께엔 '위드후니'라고 적혀있었고 등에는 '한동훈의 동료시민'이라고 적혀 있더라고.
-한 전 위원장은 당원들에게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는 것 같았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말이야. 사실 총선 패배의 책임은 한 전 위원장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쏠리는 분위기인 듯 해.
-국민의힘은 조기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구성할 예정인데 한 전 위원장 등판 가능성도 있는 거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가 될까?
-글쎄.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한 전 위원장이 여전히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거든.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이 다시 당대표가 된다면, 국민의힘이 총선 전후의 큰 변화가 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그게 딜레마야.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원 기자, 김세정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설상미 기자, 송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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