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vol.2-①] '참정권 사각지대'...여전한 지역간 정보 불균형


수도권·비수도권 정보 및 접근성 차이 커
시골 노인 유권자 "공보물? 봐도 몰라" 토로

초고령화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는 저출생뿐 아니라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역인구소멸 문제를 안고 있다. 지역간, 세대간 불균형·불평등을 초래하는 이런 심각한 사회적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불행스럽게도 지난 제22대 선거 국면에서도 지역간 불등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조차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 정보와 이동의 불균형이 뿌리를 깊게 박고 있다. <더팩트>는 4·10 총선 보도기획 [발걸음 vol.2]를 통해 대도시와 소멸위기지역의 선거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일 전북 장수군 장계면 신기마을회관 바로 옆 벽에 붙은 선거벽보. 이 마을 어르신들은 이날까지 후보들의 유세를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장수=신진환 기자

[더팩트ㅣ신진환·김정수 기자] "어떤 어떤 후보든 간에 마을 한번 찾아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없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지난 5일 전북 장수군 신기마을회관에서 만난 80대 김 씨 할아버지는 전혀 선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유세차 진입이 어려운 산기슭 시골도 아니다. 장계면행정복지센터와 불과 600m 떨어진 곳이다. TV를 통해 뉴스로만 선거철임을 접할 뿐, 직접 마을을 찾는 후보를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이 마을에 35여 가구가 산다고 소개한 김 할아버지는 "누구를 찍을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너무 소홀한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한 할머니가 가만히 얘기를 듣다가 거들었다. "누군지 알고 찍겠나. 다른 사람들이 '그냥 누구 찍어' 그런다"고.

김 할아버지는 말을 이어 갔다. "어디 갈 데도 없는 시골 노인들은 아주 외롭다. TV를 보면 도시는 후보들이 마을회관이나 노인정도 들리는데 이런 시골에는 그런 게 없다. 전주시내 방송만 보더라도 (후보들이 유권자들과) 인사도 하고 악수도 하고 그러잖나. 여기도 과거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없다. 핸드폰으로 (후보들) 문자는 자주 온다. 글씨가 작아 뭐라고 썼는지 보기 어렵다. 공보물도 마찬가진데, 여기에 까막눈인 사람들 많다. 면 단위로 대표자를 한 명이라도 뽑아서 좌담회 같은 것을 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총선이 지난 10일 막을 내린 가운데 정보 격차에 따른 참정권 사각지대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정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역 노년층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각했다.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자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 공보물로 한정된 상황에서, 이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가득해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를 우려해 이번 총선에 앞서 국내 최초로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 공보 제작 지침을 개발해 발표하기도 했다.

노년층에게 있어 정보의 불균형은 이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개개인의 판단이 적용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투표를 행사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노령층이 적극 투표층이라는 점을 미뤄보면 이같은 투표 행위는 지역의 대표성을 축소할 뿐 아니라 적확한 민의 반영에도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공약은 뭔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어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묻지마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 비수도권, 특히 고령화율이 높은 지방의 경우는 심각했다.

지난 5일 전북 김제시 교월행정복지센터에서 한 유권자가 사전투표를 마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제=신진환 기자

◆ 비수도권·소도시 노인 유권자...유일한 '정보 창구' 선거 공보물도 무용지물

<더팩트>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이날 충청과 호남 일대 가운데 '인구소멸위험지역'에 해당할 정도의 초고령화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 유권자들을 상대로 국회의원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 등에 관해 물었다. 인터뷰에 응한 노년 투표자 대부분은 공보물을 통해 후보자의 정보와 공약을 확인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공약 등과 관련된 용어가 난해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말이 곁들여져 비교적 이해하기 편리한 TV 토론회 등에 대해서는 생계를 이유로 일일이 시청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결국 유일한 정보 제공서인 공보물조차 이들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었던 셈이다.

충남 부여군 충화면 용동마을에서 만난 80대 여성 A 씨는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보물로 확인한다면서도 양이 방대하고 내용이 어려워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A 씨는 "어제 (공보물을) 봤는데 모르겠다. 읽어보지도 못하겠고. 몇십번까지 있던데, 보지도 않았다"라며 공보물 외에 다른 방법에 대해선 "없다. 모른다"라고 짧게 답했다.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그는 사전투표가 아닌 본투표 당일에 투표할 것이라며 결국엔 정당을 중심으로 투표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흑암리 마을에서 만난 75세 남성 B 씨는 "(공약 관련) 좌담회를 마을회관에서 했던 것 같은데, 가끔 이제 하는 게 있는데 저는 (일을 나가야 해서) 안 나가봐서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좌담회 결과에 대한 통보는 따로 없었다고 한다. D 씨는 "그런 걸 받은 적도 없고 잘 모른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 추천하는 사람을 뽑는다"라고 했다.

호남도 별 차이는 없었다. 전북 장수군 노루목마을에 사는 80대 할머니 C 씨는 "선거 현수막만 봤다. 여기는 촌이라 뽑아달라고 그 사람(후보)들이 오겠나. 사람 많은 곳에 가겠지, 이런 곳에는 안 온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만난 60대 남성 유권자 D 씨도 "신풍동이나 검산동 같은 시내에서나 선거 분위기가 날 텐데, 여기선 빈 차가 유세방송만 틀어놓고 지나간 것을 한 번 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전북 무주군 적상면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만난 50대 남성 E 씨도 "여기 한번 둘러보시라. 뭐가 있나. 대도시보다 많이 열악하다. 노인분들은 누가 누군지도, 어떤 공약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도권에 사는 노년 유권자는 상대적으로 후보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F 씨는 여야 후보를 모두 만나 봤다고 했다. "지하철역이나 건널목에서 유세할 때가 많더라. 그때 후보들과 만났다"고 설명했다. 서울 동작구 상도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80대 남성 G 씨 역시 "유세하는 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길래 가서 한 번 봤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이동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서 (투표소까지) 거리가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가깝다. 교통도 잘 돼있지 않나"라고 했다.

충북 보은군 수한면 노성리 마을 입구에서 만난 80대 B 씨는 (공약) 그런 건 잘 안 본다.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 공보 제작 지침을 개발해 발표했지만, 이번 총선 후보자들 대부분은 기존 형식으로 공보물을 제작했다. /보은=김정수 기자

◆지역간 정보 격차에 맞춤형 대안 필요...선관위, '쉬운 공보' 기준 제시

초고령 인구가 밀집한 지방의 소도시라고 해서 여러 세대가 고루 분포된 수도권의 투표 열기에 떨어지지 않는다. 실제 투표율을 보면 오히려 투표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총선 최다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상위 10개 지역은 모두 전남과 전북에 위치한 '군(郡)'이었다. 1위인 전남 신안군의 사전투표율은 54.81%로, 전체 사전투표율(31.28%)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10위 전남 장흥군의 사전투표율도 47.27%나 된다.

그런데도 수도권·대도시와 달리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비수도권·소도시에 거주하는 노인 유권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공보물 외에 정당과 후보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통해 정보 접근의 물리적 경계는 무너졌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데는 그 한계가 지역·나이에 따라 잔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3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4대 디지털 취약계층(장애인·고령층·저소득층·농어민) 가운데 고령층은 디지털 정보화 '접근' 수준에서 95.3%를 기록했지만, '역량' 수준에서는 55.3%, '활용' 수준에서는 73.8%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또한 지역별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은 시(市) 지역과 군(郡) 지역이 각각 100.1%, 98.7%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역량과 활용 수준에 있어서는 각각 101.7%대 80.6%, 101.1%대 87.6%라는 간극을 보였다.

선거 정보를 디지털로 취득하는 행위가 역량(PC·모바일 이용 능력)과 활용(정보·뉴스 검색, 인터넷 심화 활용 정도)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수도권·소도시의 노인 유권자가 아날로그 형태의 공보물에 의존하는 비중은 아직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역량 수준은 직전년도 실태조사(86.1%)에 비해 오히려 5.5%p 하락한 수치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 공보 제작 지침을 개발해 발표했다. 선관위는 해당 보고서를 발간하며 당사자는 문해력에 어려움을 지닌 장애인이라는 점을 명시하면서도, 이들을 비롯해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공고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 제작 지침은 문헌 연구를 통한 개념 정리와 국내외 사례 분석, 설문 및 포커스 그룹 면담을 통한 요구 조사 등을 통해 구축됐다. 특히 선관위는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의 선거공보에서 자주 사용된 공약 용어 200개를 정리해 쉬운 용어로 풀어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4차 산업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로, 법인세는 '어떤 목적을 위해 모인 단체가 돈을 벌었을 때 내는 세금' 등으로 풀어 설명하도록 권장했다. 또한 본문의 글씨 크기는 최소 14포인트(p)로 가독성을 높이고, 공보물 배경과 글자가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고대비의 색상을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선관위는 앞으로의 선거 공보물이 △간소화된 언어 및 문법 △최소한의 구두점 △단순화된 글꼴, 레이아웃 및 디자인 △제목과 핵심 메시지를 보여주는 이미지 등을 중심으로 꾸려져야 한다며 "모든 국민이 국민으로서 당연히 행사해야 하는 선거 참여 권리를 인지해 성숙한 사회로 한 걸음 발돋움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 및 확대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과 후보자 대다수는 기존 형식에 따라 공보물을 제작했지만, 노인 등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공보물 기준이 발표됨에 따라 향후 선거에선 유의미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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