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안산=신진환 기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하라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했을 뿐 단 한 번도 (세월호 참사를) 정쟁화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유불리에 이용하며 정쟁화시킨 것을 우리 모두 똑똑히 알고 있다."
김종기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에서 단호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고(故) 김수진 양 아버지인 그는 행사장에 참석한 여야 지도부 앞에서 일갈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시민은 마치 동의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는 참석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 장혜영 녹색정의당 원내대표 직무대행,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등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장동 재판 출석으로 불참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 시민 등 3000여 명은 자리를 꽉 채웠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리도 비어 있었다. 다만 앞서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10년이 지났지만,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상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라며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심심한 위로의 뜻을 드린다"고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추모 메시지를 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외치며 요구했지만, 국가는 이런 요구를 묵살하고 방해하고 탄압하며 국민이 반목하게 만들고 갈라치기 했다"라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공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또한 생명안전기본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추도사에서 안산 화랑유원지에 올해 말 착공되는 4·16 생명안전공원과 목포 신항만에 건립되는 국립 세월호생명기억관을 지자체 등과 협력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그간 무뎌지지 않은 아픔을 큰 교훈으로 삼아 재해와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바다를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추도사에서 반복되는 참사를 거론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이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동안 진전되지 못했다고 쓴소리했다. 또 "아이들이 돌아오기로 했던 금요일은 어느덧 520번이나 지나갔다"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본다. 한없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 지사의 말을 경청하는 일부 시민은 눈물을 훔쳤다.
단원고 학생들과 97년생 동갑내기인 김지애 씨의 편지 낭송에 이어 정호승 시인의 추모시 낭독, 가수 박창근 씨의 공연,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 등 4160명의 합창 공연을 끝으로 기억식이 마무리됐다. 오후 4시 16분 단원구 일대에 1분간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참석자들은 행사 초에 이어 재차 묵념하며 안타깝게 숨진 학생과 교사 등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여전히 10년의 세월 동안 진상규명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이 다 이뤄지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프다"면서 "정치권과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불참한 데 대해선 "매우 유감"이라며 "선거 패배 이후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 참석해 실질적으로 바뀐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장혜영 녹색정의당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더팩트>에 "국가의 역할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인데 세월호 10주기가 되도록 여전히 시민들 곁에 국가가 없이 큰 사고가 일어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점에 대해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면서 "이번 기억식은 많은 시민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하게 된 자리였다"고 말했다.
안산 단원을을 지역구로 둔 김남국 더불어민주연합 의원은 <더팩트>에 "세월호 참사가 10년이 지났지만 명확한 진상규명과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후속 조처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 같아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했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연대해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세월호 10주기 기억식이 열린 화랑유원지 일대는 노란 물결이 일렁였다.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노란 리본과, 노란 나비, 노란 스카프 등을 착용한 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완연하고 화창한 봄 날씨에 웃음을 짓다가 10년 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눈시울이 불거졌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깊게 팬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다.
강원도 원주시에서 왔다는 20대 한 남성은 "지난 10년간 세월호 관련해 풀린 문제가 없다 보니 마음이 답답해 직접 기억식에 왔다"고 밝혔다. 안산시민인 50대 여성 한모 씨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위로하고 명복을 비는 것 외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30대 여성 이모 씨는 "희생된 분들이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