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vol.1-④] 선거 때만 '반짝'…재외국민 투표, 개선 방향은


유편투표 등 투표방법 다양화 요구 수년째
재외국민의 헌법적 권리 보장 더뎌…선관위도 신중

국민의 소중한 한 표에는 민주주의가 담겨있다. 투표소로 가는 개인의 작은 발걸음은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한 표는 국내·외가 다르지 않지만, 재외국민 투표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재외국민 투표율은 19대 총선 45.7%, 20대 총선 41.4%에서 21대 총선에서 23.8%로 급락했다가 22대 총선에선 62.8%로 급등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전체 재외 국민 197만여 명 중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9만2923명의 투표율이다. 이처럼 재외국민 대다수가 투표를 포기하는 이유는 접근성과 함께 온라인·우편투표 자체가 불가능한 탓도 있다. <더팩트>는 22대 총선을 맞아 선거보도 기획 [발걸음 Vol.1]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의 현주소와 우편·인터넷 투표 등을 시행하는 해외 사례를 통해 도입 가능성과 개선 방향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투표율이 저조한 재외투표율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자투표 등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 국제우편물류터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이 외교행낭을 통해 회송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재외투표지의 확인 및 분류 작업을 하는 모습. /뉴시스

[더팩트ㅣ신진환·박숙현·조채원 기자] "재외투표하려면 하루를 비워야만 한다. (주인도네시아대한민국)대사관에 가려면 두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스마랑까지 간 뒤 자카르타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우편이나 전자우편으로 할 수만 있다면 고민 없이 투표할 것이다. 대사관까지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투표하지 못한 재외국민이 꽤 있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주(州) 제파라(Jepara)에서 사는 김근만(43) 씨는 지난달 25일 <더팩트>에 이같이 언급했다. 그의 말은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도 그럴 것이 투표하기 위해 수백, 수천 km의 먼 길을 가거나 생업을 제쳐두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김 씨는 "이동의 애로가 없는 방식이라면 더 많은 재외국민이 투표할 것"이라며 힘줘 말했다.

캐나다 앨버타주(州) 에드먼턴에 사는 빅토리아(영어명) 씨도 이날 통화에서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투표하려면 차로 3시간 떨어진 캘거리까지 가야 한다. 캐나다는 워낙 땅덩이가 커 저보다 투표소까지 가는 데 훨씬 오래 걸리는 이들도 있다. 한국만큼 많은 투표소를 마련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국외 여건은 본국보다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재외국민에 한해 우편투표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선거철 전후로 반복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팩트>와 연락한 일부 재외국민은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에는 프랑스 마르세유에 거주하는 한 교민이 재외국민 투표를 위해 왕복 1600km를 이동하는 과정이 담겼다. 이 교민은 버스를 시작으로 비행기 열차는 물론 영사관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감수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프랑스 교민 제공

◆투표방식 다양화 요구…수년째 입법 흐지부지

선관위가 재외공관에 투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음에도 재외국민은 투표소까지 가는 자체를 주저하고 있다. 물론 선관위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영구명부제를 도입하고 투표소를 추가 설치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재외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국회의 법 개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사이 평등한 민주주의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재외국민 다수가 참정권을 외면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우편투표 도입을 위한 입법 노력이 있었다. 현재 21대 국회만 보더라도 재외국민 우편투표를 뼈대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발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서영교·설훈·이성만·임종성)과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의 법안은 임기 만료에 따른 자동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편투표 도입 등 대안 마련에 공감대를 이룬 여야의 입법 논의도 흐지부지된 지 오래다.

인터넷투표를 포함한 전자투표 논의는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했다. 2005년에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전자선거추진협의회를 설치했고 선관위는 투·개표 선진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12년 총선까지 인터넷투표, 투표소에서의 종이투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를 병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투표제도의 법적 쟁점과 제도 정비 방안, 기술적 문제와 대안이 논의되면서 급물살을 탔으나 성과는 없었다.

제21대에서도 재외국민 우편투표를 뼈대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되는 수순이다. 이번 22대 총선 때도 투표소가 마련된 공관으로부터 먼 거리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은 사실상 선거권을 행사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더팩트 DB

입법화가 무산된 데는 안정성과 국민 신뢰 문제가 대표적이지만, 기저에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진보 진영 후보가 재외국민 투표가 처음 실시된 2012년 18대 대선 이후 3차례 대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3.53%포인트 차이로 이겼지만, 재외선거 득표율에서는 문 후보 득표율이 더 앞서 두 후보 격차는 13.9%포인트였다. 2017년 19대 대선 재외선거에서는 문 후보가 59.2%를 얻어 홍준표 후보(7.8%)와 무려 51.4%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전체 득표율 격차(17.05%)보다 훨씬 큰 것이다. 20대 대선에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후보 간 득표율 격차는 21.9%포인트로, 전체 선거 득표율 격차보다 역시 크게 차이 났다.

이와 별개로 보안 문제와 국민 부정 여론에 입법 등 제도화 논의는 멈춘 상태다. 기술적으로는 다소 진전을 이뤘다. 중앙선관위가 온라인 투표시스템인 'K-voting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발 및 운영해오고 있다. 선관위는 2019년부터 자체구축 시스템 서비스를 개시해 2021년부터는 블록체인 기술까지 적용했다. 재외국민이 빠짐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투표율의 재고 방안으로 우편투표·전자투표 등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과잉 대표성' 쟁점..."진지성·밀접성 달라" vs "보통선거 원칙 존중해야"

그런데도 여전히 우편이나 모바일, 팩스, e메일 방식의 투표를 재외국민에게만 허용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저조한 투표율을 단번에 높일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편의성과 선거관리와 운영에도 장점이 있기에 직접 투표소에 가는 방법의 대안이라는 찬성론이 있다. 대리투표가 횡행할 수도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또한 외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선거법 위반 행위를 단속하기 어렵고, 실제 위반이 의심된다더라도 수사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제도적 장점과 허점에 관한 찬반이 충돌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재외국민 투표 방식의 다양화를 두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재외국민과 국내 유권자에게 모두 동일한 한 표를 보장해야 하느냐가 쟁점 중 하나인 이유다. 외국에 수십 년 거주하면서도 국적을 유지하는 이들이 국내 유권자들과 같거나 더 편리한 투표 편의를 제공받아 선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면 이들이 '캐스팅보터'가 되고, 실질적인 정치 수요자들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재외선거제도 부활의 계기가 된 헌법재판소(헌재)의 2007년 6월 헌법불합치 결정에서도 이러한 취지의 별개 의견이 나왔다. 이공현 당시 재판관은 "한국과는 다른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인 환경의 외국에 생활 기반이 있거나 또는 그곳에 영주할 의사와 권리가 있는 자와 그렇지 아니한 국외 거주자와의 사이에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선거나 정치 참여에 대해 가지는 진지성이나 밀접성이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국제우편물류터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이 외교행낭을 통해 회송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재외투표지의 확인 및 분류 작업을 하는 모습. /뉴시스

이와 관련, 일부 국가에선 재외선거인 자격요건을 둬 선거권 부여 대상을 제한하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외선거인 자격요건이 영국(15년), 독일(25년), 호주(6년), 캐나다(5년), 뉴질랜드(3년) 등으로 상이하다. 다만 이 외 국가에선 별도 기간 제한이 없다.

이준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입한다고 투표율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헌법 소원이 제기될 수 있다. 국내 유권자들에겐 우편투표, 전자투표를 안 해주는데 왜 불평등하게 재외국민에게만 해주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또 부정선거나 대리투표가 성행한다는 우려도 있어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광범위하게 투표권을 보장해 '보통선거원칙 실현'한다는 점에서, 제도화의 당위성은 충분하다는 평가도 있다. 헌재도 2007년 결정문에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위험이나 국가의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기술상의 어려움이나 장애 등을 사유로 그 제한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보통선거원칙에 더 무게를 뒀고, 이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핵심 근거였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우편투표가 자유선거원칙과 비밀투표 원칙에 위반된다는 세 차례의 위헌소송심판에서 우편투표의 합헌성을 인정한 바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재외국민 유권자 과잉 대표성' 지적에 대해 "맞지 않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국내에서도 선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외국에 오래 있어서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것을 뭐로 입증하겠나"라고 반박했다. 또 "우편투표나 전자투표는 전자민주주의 시대에 도입해 볼 만은 하다"라며 "투명성이 문제가 될 텐데 상당한 합의를 거쳐야 하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검증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외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우편투표 등의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관련 논의는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이새롬 기자

◆'헉'소리 나는 재외선거 비용…투표 방법 변화 '요원'

저조한 투표율에 비해 재외선거에 수반되는 예산 규모가 꽤 크다는 점에서 현행 투표 방법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중앙선관위에 문의한 결과, 22대 총선 재외선거 비용으로 143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21대 총선 88억 원(집행액 기준)보다 훌쩍 뛰었다. 이 예산은 투표소 관리·유지와 행정, 인력 파견·체류 등 비용으로 쓰인다. 이번 총선의 실질적 재외투표율이 4.71%에 불과한데 상당히 큰 규모의 혈세가 소요된다. 재외투표자 수(9만2923명)를 고려하면 재외유권자 1명의 투표 비용은 15만 원이 넘는 셈이다. 국내선거 1인 투표 비용(약 5000원)의 30배에 달한다.

투표 방법의 다양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재외국민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지만 당분간 제도 도입은 요원해 보인다. 중앙선관위는 우편투표 등 도입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라는 시각을 내비쳤다.

선관위 관계자는 <더팩트>에 "재외선거 우편투표 도입 시 재외국민의 투표 편의를 제고하는 장점이 있을 것이나 우편투표의 특성상 허위신고 및 대리투표에 대한 우려가 있고 국가별 우편제도가 상이함에 따라 우편물 분실이나 배달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선거의 공정성과 안정성 확보가 곤란한 문제점이 있다"며 "따라서, 우편투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중한 검토와 정치·사회적 합의를 통한 중· 장기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넷투표 도입에 대해선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재외동포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재외동포청 관계자는 "선관위와 재외공관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가 끝나면 공관으로부터 개선의견 등 수렴해 선관위에 전달하고, 참정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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