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을 9일 남겨둔 1일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을 둘러싼 의료계 반발 등 의료개혁 현안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규모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국민 우려가 커지고 여당 내에서도 '유연한 대응'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압박하자, 그간 고수해온 '2000명 증원 계획' 입장에서 선회해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위해 브리핑룸 연단에 섰다. 윤 대통령이 공식 기자회견이나 신년사를 제외하고 특정 현안에 대해 대국민 메시지를 낸 것은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불발 이후 4개월 만이다. 이번 대국민 담화는 전날(31일) 늦은 오후 전격 결정됐고, 당과의 조율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약 50분 간의 담화를 통해 급속한 고령화 추이 등 늘어난 의사 수요 대응을 위해 정부가 정한 '2000명 증원'은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의료계가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할 경우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가 증원 규모를 2000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시해야 마땅하다"며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복귀를 호소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의사단체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테이블에 앉아 무엇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길인지 논의에 나서야 한다"며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 관련 직역 간 광범위한 협력을 통해 의료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은 이달 출범하는 '의료개혁을 위한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와 함께 국민, 의료계, 정부가 참여하는 의료개혁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 구성도 새롭게 제안해 의료개혁 관련 대화의 장을 넓힐 것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데는 장기화한 의정 갈등에 대한 국민 피로감과 여당 내 요구 등 정치적 부담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서울경제신문 의뢰, 3월 28일~29일 조사,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1명 대상 조사, 오차범위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에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응답자의 65%는 '정부와 의료계가 협상을 통해 증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답했고, '원안 고수'에 대한 응답은 31%에 그쳤다.
여당 내에서도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의대 증원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나경원·안철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은 대통령실이 먼저 유연한 태도를 보여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윤 대통령이 지난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에 대한 유연한 처리를 당부하고, 의료인들과의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주문했지만 최대 쟁점인 의대 증원 규모에 가로막혀 의정 협상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신임 회장 당선자는 윤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관 파면 등을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며 강경 투쟁까지 내건 상황이다.
이번 담화를 기점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협상 테이블에서 의대 증원 규모를 어느 정도 조정할지 주목된다. 각 대학별 의과대학 정원 배분을 마친 만큼 교육계와 입시 혼선을 줄이기 위해 2025년 의대 정원은 2000명으로 유지하되, '2035년까지 1만 명 확충' 계획을 조정해 2026년도 정원 규모부터 조정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한편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한 휴대폰 가상(안심) 번호 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13.2%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