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尹, 민생 챙기고 리스크 관리…역대 대통령 행보는? 


민생토론회 '임시 중단'…적극 행보 이어갈 듯 
역대 대통령, 우회적으로 집권당 지원 행보  

윤석열 대통령이 22대 총선을 2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명동성당 내 무료 급식소인 명동밥집을 찾아 배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연일 민생 행보를 보이며 지역 일정도 적극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22대 총선이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공식 선거운동 기간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은 5년 재임 기간 한 차례 실시되는 총선을 통해 '중간 성적표'를 받는다. 그 결과에 따라 국정운영 추진에 동력을 얻거나 제동이 걸릴 수 있어 그 누구보다 총선 승리가 절실하다. 동시에 고위 공직자로서 '선거중립의무'가 요구돼 총선을 앞둔 대통령의 메시지와 일정에는 세밀한 정무적 판단과 전략이 녹아들게 된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임했던 권위주의 시절이 지나가고 200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지만 지역 행보와 민생 일정을 강화하면서 집권당을 측면 지원하는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반복해왔다.

여야 정치권이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는 동안 윤 대통령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실시한 민생토론회 개최를 명분으로 전국 곳곳을 방문해 대선 지역 공약과 지역 숙원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생중계로 알리고 있다. 야당은 "여당 선거대책위원장인가"라며 선거 개입 논란을 제기했지만 윤 대통령은 "지역 맞춤형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한 것"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총선을 약 한 달 남겨둔 시점에도 강원 춘천(3월 11일), 경남 사천(13일), 전남 무안(14일), 서울 영등포구(19일), 강원 원주(21일), 경기도 용인(25일), 충북 청주(26일)을 찾아 5번의 민생토론회, 우주산업 클러스터 출범식을 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22차례 민생토론회 기준 윤 대통령은 토론회 참석을 위해 총 4970㎞를 이동했다. 서울과 부산을 약 6번 왕복하는 거리다. 또 민생토론회에서 총 1671명을 만났다. 민생토론회 계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민생정책 개선 과제는 총 359건으로, 성과가 적지 않다는 게 내부 평가다. 내년도 에산안 편성 과정에서 민생토론회에서 제기한 정책 수요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다만 4·10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민생토론회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관권 선거용'이라는 야당의 문제 제기가 지속되면 민생토론회 본래 취지와 내용이 빛바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생토론회는 쉼표를 찍었지만 민생 행보를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지난달 27일 서울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인 명동밥집에서 배식 봉사활동을 펼쳤다. 배식 봉사활동은 취임 후 첫 추석 연휴 때 이후 1년6개월여 만이었다. 대통령실은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평소 철학과 의지에 따른 행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32개 법정 부담금 폐지 또는 감면과 263건 규제 유예 적용 등 정책들을 생중계로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경기 회복세가 민생 경기 전반으로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정부는 국민 부담을 덜어드리고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노선 개통식에 참석해 나머지 노선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한마음으로 정부의 노력에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오후에는 늘봄학교 시범 초등학교를 찾아 일일 특별강사로 변신했다. 윤 대통령은 다음 주에도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과제들을 직접 점검하는 회의를 주재하는 등 '민생 챙기기' 일정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정국에서 윤 대통령이 정면에 등장하면서 '정권견제론' 대 '정권지원론' 구도가 더 선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28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선거 초반에는 '한동훈 위원장 대 이재명 대표' 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구도였는데 그것들이 자꾸 묻히고 이제 '윤석열 대통령 대 조국, 이재명' 이렇게 감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조금은 불리한 전선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았나"라며 "당과 대통령실과의 관계에 있어서 당이 주도권을 가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야당이 당력을 총동원해 '정권심판론'에 불을 지피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 하나하나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서울의 한 마트를 찾아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국민 체감 물가와 동떨어진 현실인식 수준이라는 야당의 공세가 적중하면서 발언의 진의와 달리 중도층 표심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리스크 관리에도 돌입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주호주대사로 임명한 지 25일 만이었다. 이 전 대사는 '故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야당이 '도피성 부임' 논란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총선 악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해 물의를 빚은 황상무 전 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대통령실은 여당 지도부가 두 사안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며 초반에 문제 제기할 때만 해도 이를 거절했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이 커지자 결단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에서 열린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해 "저와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독재 정권 시절 대통령의 총선 지원은 부정행위까지 동원하며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1971년 5월 11일 제8대 총선 전남 진안군 지원유세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 /국정홍보처 발간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9권

독재 정권 시절 국가권력의 선거개입은 '당연한 일'처럼 행해졌다. 대표적으로 1967년 제6대 대선으로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헌법을 3선이 가능토록 하는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그해 열린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놓고 선거운동을 펼쳤다. 지방과 농촌을 겨냥한 선심성 선거운동으로 이른바 '막걸리·고무신 선거'라는 오명을 낳았다. 총선을 일주일 전에는 야당 전국구 후보인 김재화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해 총선 판을 흔들었다. 그 결과 여당이었던 공화당은 개헌선 117석을 훨씬 웃도는 의석 129석을 차지해 69년 3선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이후 총선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여당인 민주공화당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공천자들을 만나 격려하고, 지역 곳곳을 다니며 여당 지역구 후보들의 총선 지원유세도 하는 등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이곤 했다.

대통령의 '여당 총선 지원'은 군사 정권이 종식되고 87년 체제, 민주 정권을 거치면서 '해선 안 될 일'이 됐다. 1994년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담은 '공직선거법'이 제정됐지만,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겸임했던 과도기 단계까지만 해도 공천권 행사와 '민생 점검'을 명분으로 한 각종 단체장 청와대 초청과 선심성 공약 남발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모든 당직과 공천심사위원을 임명하고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선거대책위원장에 임명해 여당을 1당에 올려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공천심사위원회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천에 강한 입김을 불어 넣으면서 당무 개입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가 엄격하게 적용된 것은 2004년 제17대 총선 이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여당 총재 권한을 포기했는데, 한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발언이 화근이 됐다. 이에 선거부정방지법이 정한 중립의무 및 헌법 위반을 이유로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 재임 중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고, 총선은 대통령의 직무 정지 속에 치러졌다.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총선에서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자제했지만, 공통적으로 지역 행보를 강화하고 '힘 있는 정부'를 호소하며 집권당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행보를 보였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위헌 소지가 되면서 사라졌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지역 행보와 민생 일정을 강화하면서 집권당을 측면 지원하는 모습은 반복돼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0년 4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 입국 검역소를 방문해 코로나19 방역 최일선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인천공항 검역소 관계자를 비롯한 관계부처 직원들을 격려하는 모습. /문재인 청와대 제공

2008년 제18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장 업무보고'를 명분으로 경기도 용인, 강원도 춘천, 경북 구미, 전북 군산, 대전, 광주, 부산 등 지방을 찾았다.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와 판박이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 "군산은 제2의 고향" 등의 발언과 함께 각종 지역 사업 추진을 약속해 야당으로부터 '선거 개입' 비판을 받았다. 다만 여야가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후로는 지역 일정을 자제했다. 임기 마지막 해에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지역 행보 없이 비상경제대책회의, 국무회의, 경찰대학 임용식 참석 등 통상 일정이 다수였다. 총선 2주 전에는 서울에서 열린 국제연합(UN) 주관 정상회의인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재하느라 정상회담 등 바쁜 외교 일정을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2016년 제20대 총선 전 현장 행보를 강화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방문을 이유로 대구, 부산, 충북, 전북 등을 찾았다. 또 충남 아산을 찾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하고 판교에 위치한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식에도 참석하는 등 총선을 한 달 반 남겨두고 지역현장을 15곳 방문했다. 당시 청와대는 "국정 핵심과제 현장 점검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1대 총선을 앞두고 경제 관련 회의를 집중적으로 개최하고 지역 곳곳을 방문했다. 총선을 한 달 전 제1차 비상경제회의 개최를 시작해 선거일 전까지 4차례 회의를 주재했다. 총선을 10여 일 전에는 구미산업단지 방문,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 강원도 식목 행사, 인천국제공항 검역현장 격려 방문,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한국파스퇴르연구소 방문 일정 등을 소화했다. 당시 청와대는 다수 일정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응 차원이었다고 강조했지만 야당에선 '집권당 지원 행보'라고 공세를 펼쳤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일정보다 정책 면에서 '선거 개입' 논란이 컸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 상당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여당의 압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윤 대통령이 오는 5일부터 이틀간 실시되는 사전투표에 참여할지도 주목된다. 문 전 대통령은 투표 독려 차원에서 김정숙 여사와 함께 사전투표에 응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전투표를 검토했으나 선거 개입 논란 등을 우려해 본투표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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