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9일 이종섭 주호주 대사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대사가 임명(4일)된 지 25일 만,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 차 귀국한 시점(21일)으로부턴 8일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곧 이를 재가할 전망이다.
외교부는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이 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 대사 측이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오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지 2시간 여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 대사의 임명에 문제가 없다며 철회 가능성도 일축해왔다. 그러나 '도피 출국', '회의 급조' 의혹이 사그러들지 않는 상황 등을 감안해 이뤄진 조치로 해석된다.
◆수사 중인데 재외공관장? 임명부터 귀국까지 논란의 연속
이 대사 관련 논란은 호주대사 임명 직후부터 끊이지 않았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인 인사를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건 부적절하단 비판이 나왔다. 속전속결로 이뤄진 공수처 약식 조사(7일), 법무부 출국금지 해제(8일), 호주 출국(10일)에 이르는 과정은 '수사 회피', '도피성 출국'이란 의구심을 낳았다.
이 대사는 출국 11일만인 21일 방산 협력 6개국 공관장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했지만 여론은 더 악화했다. 이 대사가 4·10 총선 이후까지 한국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29일 종료될 것으로 알려졌던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 일정이 1주 더 연장된 것도 의심을 키웠다. 재외공관장의 국내 체류가 길어질수록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 이 대사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공무 일정으로 볼 수 있느냐, 이 대사에게 귀국 명분을 주기 위해 공관장회의를 급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졌다. 결국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이 이 대사 거취를 정리하고 조사에 임하게 하는 것만이 각종 논란을 잠재울 방안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종섭 사의 표명에…'방산협력 중대성' 강조하던 외교부 "난감"
이 대사가 한 달도 안 돼 사임하면서 "주요국과의 방산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라던 외교부는 난감한 모양새가 됐다. 주요국 공관장이 예정된 방산 관련 일정을 다 마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대사는 이날 오전 한국무역보험공사 방문 일정에 불참했다.
외교부는 이 대사가 귀국한 21일엔 "다음 주 개최되는 공관장회의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도 공개를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했다 '공무 범위'에 대한 질의가 빗발치자 결국 일정을 공개했다. 이 대사의 귀국 활동이 공무적 성격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듯 외교장관이 소속 재외공관장을 개별면담하는 내용까지 보도자료를 냈던 이례적 공보 지침 등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공관장 공백에 따른 업무 차질과 핵심 우방국인 호주에 대한 외교적 결례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이 대사가 조기 귀국하면서 차석이 대사대리를 맡아 필요한 외교 활동과 영사조력을 해왔는데 후임자가 인선될 때까지 장기화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4월 말 또는 5월 초로 막바지 조율 중이던 한국과 호주 간 '외교·국방장관(2+2) 회의' 준비 역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