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전 국방부 장관인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주호주대사에 임명한 지 25일 만이다. 총선을 10여 일 앞두고 이 대사 '빼돌리기 임명 논란'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커지자 윤 대통령이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9일 오후 이 대사 면직안을 재가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앞서 외교부는 "이종섭 주호주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故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대상이지만 지난 4일 주호주대사에 임명됐다. 이 과정에서 이 대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요청으로 출국금지 상태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지만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고발 이후 6개월 동안 이 전 장관을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며 대사 임명과 출국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신원이 분명한 이 대사의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부당한 조치였다며 오히려 '수사권 남용'이라고 반격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이 대사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이 대사는 호주로 떠났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 대사의 대사 임명과 출국 과정 전반을 밝히기 위한 특검 법안을 당론 채택하는 등 공세를 퍼부으면서 '이종섭 리스크'는 총선 최대 이슈로 부상했고, 여당 지도부도 이 대사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초반에 거부했지만 이내 입장을 선회했고, 이 대사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지난 21일 귀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사는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 대사 논란이 총선 전체 판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에 따라 윤 대통령이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번 야당의 부당한 정치 공세라는 인식은 여전하지만, 공수처가 소환을 미루며 이 대사가 국내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총선에도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특히 여당 측에서 이 대사 해임을 대통령실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경합 지역, 아니면 우세였는데 열세로 돌아선 곳이 여러 곳 있다"고 현 총선 판세를 전하기도 했다.
이 대사 면직은 임명된 지 25일만, 호주 정부에 신임장을 제출하고 공식 업무를 개시한 지 17일 만이다. 수사 대상 인물의 대사 임명과 조기 귀국, 조기 사퇴로 귀결된 일련의 사태는 상대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는 평가와 함께, 윤 대통령의 '인사 부실' 책임론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범인 도피와 직권 남용 혐의로 민주당으로부터 공수처에 고발도 당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