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경기 회복세가 민생 경기 전반으로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정부는 국민 부담을 덜어드리고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91개 법정 부담금 중 18개를 없애고, 총 263건의 규제에 2년간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중소기업에 총 42조 원의 자금을 공급해 민생활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부담금 정비와 규제 유예 방안, 민생 활력을 높이는 금융지원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지난 18일 서울의 한 마트를 찾아 민생경제점검회의를 열고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을 논의한 데 이은 '민생 경제 행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반도체 경기회복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고용률이 25개월 연속 역대 최고를 경신하는 등 경기 전반으로는 회복 흐름을 보인다고 평가하면서 민생 경기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행 총 91개 법정 부담금 중 18개의 부담금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모든 부담금을 원점에서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 경비에 사용하기 위해 해당 사업과 특별히 관계가 있는 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로, 징수된 부담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수입으로 귀속된다. 부과 원칙과는 다르게 정부가 특정 사업과 이해관계가 먼 이들에게도 부담금을 불합리하고 과다하게 징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정부는 지난해부터 '부담금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해 왔다.
윤 대통령은 부담금에 대해 "부담금 폐지는 수십 년 정부가 거쳐오면서 너무 무책임하게 방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 역시도 부담금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했었다"면서 이번 부담금 정비 방안에 대해 "역대 어느 정부도 추진하지 못했던 과감하고 획기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박춘섭 경제수석도 "이번 부담금 정비 방안은 최초, 최대, 최고"라며 2002년 부담금 관리 체계가 도입된 이후 최초의 전면 개편이자, 정비 대상 부담금도 32개로 최대이며, 경감 규모도 연간 2조 원 수준으로 최고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폐지된 부담금 중엔 영화상영관 입장권 가액의 3%에 해당하던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도 있다. 부담금이 폐지됨에 따라 영화 가격도 약 500원 정도 인하될 것으로 대통령실은 전망했다. 또 항공 요금에 포함된 출국 납부금은 기존 1만1000원에서 7000원으로 4000원 인하되고, 면제 대상은 현재 2세에서 12세까지 확대된다. 이로 인해 약 1344억 원이 경감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또 여권 발급 시 내야 하는 국제교류 기여금도 복수여권은 3000원 인하되고, 단수여권 및 여행증명서의 경우 면제된다.
대통령실은 이번에 마련한 정비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실제 요금 및 가격 인하가 이뤄지도록 법령 개정 등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밝혔다.
부담금이 폐지되면서 특정 사업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영화산업, 청년농업인 육성과 같이 꼭 필요한 사업들은 일반회계를 활용해서도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입장권 부과금을 이번에 폐지하면서 영화산업에 대해선 일반회계에서 영화발전기금에 전출시키면 정부가 그 이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는 총 263건에 달하는 규제들을 2년간 한시적으로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민생 개선과 투자 확대를 위해 필요한 분야의 규제를 손봤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한시적 규제 유예 카드를 꺼낸 것은 2009년(145건)과 2016년(54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규제 유예와 관련해 투자·창업 촉진 분야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고도제한을 현행 120m에서 150m까지 완화한다. 또 비사업용 승용차의 최초 검사 주기를 신차 등록 후 4년에서 5년으로 완화하고, 행복주택에 거주하는 청년과 신혼부부의 거주기간도 6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다. 가족 돌봄 시에도 장애인 활동지원금 지급을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최소 4조 원의 경제적 효과가 창충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중소기업의 경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총 42조 원의 자금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의 고금리 부담 완화를 위한 총 2조3000억 원 규모의 금리 경감 방안, 은행권의 6000억 원의 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 등이다. 이와 함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보증공급 규모도 대폭 확대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주택금융공사의 보증 규모를 기존 25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5조 원 키우고, 건설공제조합을 주축으로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웠던 비주택사업장에 대해서도 보증 규모를 4조 원 확대하는 방안을 연내 도입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고금리 ·고물가로 어려운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돈이 돌게 만들겠다"며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은행이 함께 기업들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적기에 맞춤형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회의를 마치면서 "오늘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서 신속하게 효과를 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부담금 폐지, 감면과 263건의 규제 적용을 2년간 유예하는 건 국민들이 아셔야 한다"며 참모들에게 정책 홍보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회의에는 기업, 학계, 연구기관, 경제단체 관계자 등 총 30여 명이 참석했다. 정부와 유관기관에서는 기획재정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교육부 차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 대통령실에서는 이관섭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박춘섭 경제수석, 장상윤 사회수석 등이 배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