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22대 총선 공식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양당 지도부가 나란히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선거법으로 인해 현장에서 후보들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여야 간 불필요한 공방을 부추겨 선거판이 더욱 혼탁해지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지난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이 대표가 마이크를 통해 발언한 것이 '확성장치 사용 선거운동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공직선거법 59조에 따르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닐 때에는 마이크 등 확성장치를 사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법의 규정에 의한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토론용으로 사용할 때는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대표의 경우 현장 기자회견을 이유로 마이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선거법을 따져볼 여지가 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클린선거본부(본부)는 "현장 기자회견을 빙자한 꼼수 마이크 사용"이라고 비판했다. 본부는 이 대표를 두고 "동탄호수공원, 서울 마포, 전남대, 파주 금릉역 중앙광장에서 다수의 군중을 모아 놓고, 야외 기자회견을 핑계로 마이크로 선거 유세를 해 공직선거법상 확성장치 사용금지 규정을 어겼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지난 23일 이 대표가 포천에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24번 서승만이었다. 24번까지 당선시켜야죠"라고 말해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공직선거법 88조에 따르면 후보자 등은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이 대표는 인천 계양을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위한 선거운동을 벌인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본부는 "민주당 스스로도 지역구 후보자가 다른 정당의 비례후보를 지원할 경우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음을 공지한 바 있다"며 "국민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기형적 선거 제도를 만들어 놓고, 현행 법률까지 위반했으므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25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됐다. 한 위원장은 지난 21일 윤재옥 원내대표의 대구 달서구을 선거 사무소 개소식을 찾아 행사 10여분간 마이크를 사용해 국민의힘 지지를 호소했다. 녹색정의당은 "이는 22대 총선에서 후보도 아닌 자가 옥내집회에서 확성장치를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위원장은 자당의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확성장치를 사용하여 불법선거운동을 대놓고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후보자들은 이 같은 공직선거법을 의식한 듯 마이크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21일 부산 유세 현장에서 연설 도중 관계자가 마이크를 건네자 "지금 스피커(확성기)를 쓰면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에 육성으로 한다"며 "사용하면 안 된다. 양해를 구한다"고 거절했다. 반면 해당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몰매를 맞은 후보도 있다. 안귀령 서울 도봉갑 민주당 후보는 최근 지역 노래 교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 뒤 노래를 불렀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도봉구선관위로부터 '엄중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문제는 모호한 선거법으로 인해 현장에서 후보들의 혼선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대표의 경우처럼 기자회견을 자처해 한 발언이 선거운동이냐 아니냐를 놓고 판단할 때도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이와 관련 한 법조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하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여야 한다"며 "다만 선거 유세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건 선거운동 차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명백하게 선거운동이라고 인식이 될 정도가 돼야 한다"며 "어떤 사람들은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판단이 다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선거 후보는 "2004년 오세훈 시장 중심으로 만들어진 선거법인데 개정 필요성이 있다"며 "현장에서 신경 쓸 게 너무 많고, 여야 고발전도 지나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