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통일부는 4일 지난달 공개한 풍계리 방사선 피폭 조사 보고서 중 염색체 변형이 확인된 피검자 정보가 대부분 공개되지 않은 데 대해 "개인정보 동의를 한 범위까지 최대한 공개했다"고 말했다. 정보공개가 미흡하단 지적은 특히 핵실험 당시 피검자의 거주지역, 직업 등에 대한 내용이 이번엔 공개되지 않아 제기됐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가 밝힌 검사 결과에선 공개됐던 것들이다.
통일부는 지난달 29일 출입기자단만을 대상으로 지난해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8개 시군(길주군, 화대군, 김책시, 명간군, 명천군, 어랑군, 단천시, 백암군) 출신 탈북민 80명에 대해 실시한 방사선 피폭·방사능 오염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검사는 통일부의 지원을 받아 원자력의학원이 수행했다. 인근 8개 시군 탈북민은 총 796명으로 이 중 2017, 2018년을 포함 지난해까지 총 150명이 피폭 검사를 받았다.
통일부는 이번 조사 결과 누적(평생) 방사선 피폭을 평가하는 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 결과 최소검출한계(0.25그레이) 이상의 선량값을 기록한 17명의 상세 이력을 별도로 공개했다. 의학원 측은 염색체 변형이 확인된 일부에 대해 "핵실험에 따른 피폭도 원인 중 하나로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흡연, CT 촬영으로 인한 의료 방사선 피폭 등 교란요인이 존재한단 점도 언급했다.
구병삼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2018년에는 동의를 받고 공개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때에 비해 개인정보에 대한 규정들이나 자체 규정들이 더 강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피검자의 핵실험 당시 거주지역과 직업 등은 개인정보에 해당해 당사자 동의를 거쳐야만 공개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다른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국회 제출 자료와 일반 언론 공개용 자료의 차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통일부 보도자료를 모아 볼 수 있는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성별과 나이만 공개된 피검자의 핵실험 당시 거주지, 직업 등이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가 불가능한 개인정보인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 뿐 아니라 '가명처리를 거쳐 생성된 정보로서 그 자체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정보'도 해당한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개인정보처리자는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개인정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삭제·대체하는 등 가명처리를 통해 추가 정보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를 이용, 제공, 결합 등 처리할 수 있게 돼 있다.
일부 인권조사단체는 '제한된 정보 공개가 전수 검사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피폭 전수조사는 풍계리 일대의 지하수 등이 방사성 물질로 오염됐고, 인근 주민들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우려를 검증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대표는 통화에서 "전수검사 취지는 과거 피폭검사 한계를 보완하고, 문재인 정부 때 피폭조사 결과를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구심을 현 정부 들어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차원인데 전 정부 때보다 가려진 정보가 많다는 게 제일 문제"라고 꼬집었다. TJWG보고서에 따르면 통일부는 2017년 검사 결과는 2년 만에, 2018년 검사 결과는 9개월 만에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에 처음 제출했다. 아시아경제는 지난해 5월 '통일부는 2017, 2018년 조사에서 피폭이 우려되는 탈북민의 식수원을 조사해 식수와 피폭 간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자료로 해석될 수 있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1~6차 핵실험 당시 거주지역과 직업 등을 알지 못할 경우 피검자의 시기별 거주지, 풍계리 핵실험장, 취수원 사이의 거리와의 관련성을 짚어보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며 "검사를 거듭할수록 감춰지는 정보가 더 많아질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TJWG은 지난해 2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장이 있는 풍계리 일대의 지하수 등이 방사성 물질로 오염됐을 수 있고, 반경 40km 이내에 있는 지역 주민들이 이 물질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 대변인은 향후 민간단체 등이 연구 목적으로 정보를 요구하면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따라 법률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 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는 지난해부터 민간을 대상으로도 피폭 검사 정보를 적극 공유할 것을 요구해 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종합감사에서 '윤석열 정부 통일부는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능 노출에 대해 민간이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조사해야 한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지적에 "(올해 진행 중인 80명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오면 민간과 적극 공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