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월)31일 "올해는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 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이 예상되고 있다"며 한반도 안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직접 밝혔다. 아울러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시나리오별로 정교한 대비계획을 세울 것을 주문했다. 선제적이고 압도적인 대응 태세를 점검하는 모습을 보여 높아진 안보 우려를 해소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전문가는 북한이 먼저 무력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야당은 정부의 '안보 위기관리 능력'을 비판하면서 대화 채널 복원과 외교적 차원의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와 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연달아 주재했다. 윤 대통령은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북한의 최근 잇따른 미사일 발사, 서해상 포격 등 도발에 대해 "반민족 반통일이며 역사에 역행하는 도발이고 위협"이라고 규탄하고, 북한 정권을 향해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인 집단", "오로지 세습 전체주의 정권 유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높은 수위의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해외의 안보 전문가들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며 대비 태세를 철저히 갖춰달라고 주문했다.
올해 중앙통합방위회의는 이전과 달리 북한의 도발 시나리오를 상정해 실전적 대응을 점검하는 내용으로 진행했다. 북한의 장사정포 도발, 공항 등 기반시설 대상 사이버·전자기 공격 상황 등 당면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해 정부, 군, 지방자치단체 각자의 역할과 대응계획을 논의하는 식이다.
이어 오후에 윤 대통령은 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해 각 군의 군사대비태세를 보고 받고 점검했다.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를 교전 상대국이자 주적으로 규정하면서 국민 불안과 국론 분열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장병들이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관으로 정신 무장할 수 있도록 지휘관들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이 하루 전체를 안보 일정에 할애한 데는 '현재의 안보상황이 엄중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인성환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전날(30일) 브리핑에서 설명했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일주일 동안 서해상으로 세 차례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그에 앞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해상사격을 실시하는 등 도발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대남노선의 방향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맞섰다. 남북 지도자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하면서 한반도 내 긴장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최근 NLL을 부정하고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NLL 주변에서의 우발적 충돌이 자칫 국지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한미 동맹을 축으로 '북핵 억제력'을 강화하고 '강대강 기조'로만 일관하면 오히려 한반도 안보 위협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남북, 북미 간 대화 부재 속에 우리 정부에 대한 미국의 안보 확증이 과해지면 체제 존속의 위협을 느낀 북한이 전술핵 사용까지 고려하는 상황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다. 2022년 연말 한미가 대규모 공중 연합 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을 5년 만에 부활시켜 실시하자, 북한은 완충구역에 십여 차례에 걸쳐 포사격을 실시했고, 연말에는 북한 무인기 5대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의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다만 이때까지도 정부는 "도발을 즉각 중단하고 우리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호응해 나와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상황은 더 급박하게 전개됐다.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앞두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과 초대형 방사포(단거리탄도미사일·SRBM)를 발사했다. 지난해 4월 한미가 정상회담을 통해 핵 확장억제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하기로 하자, 북한은 그해 9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갖고 군사적 밀착을 시도했다. 이후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고, 이에 우리 정부가 군사분계선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규정한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을 '일시 정지'한다고 발표하자, 북한이 곧바로 비무장지대의 재무장화와 해상 사격까지 실시하면서 안보 안전 장치였던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전면 파기됐다.
전문가는 최근 북한의 도발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을 형성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김정은(위원장)이 협박성 발언을 하고 미사일을 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행동은 안 하고 있다. 재래식 전력이 대한민국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끊임없이 협박하면서 국민을 피로하게 하고 비난의 화살이 우리 정부로 돌아가게 만들고자 하는 북한의 셈법"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미가 연합으로 강력하게 대비하면 김정은은 절대로 도발할 수 없다. 그게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주는 행태다. (따라서 북한의 도발에) 너무 흔들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반면 야당은 정부의 '안보 위기 관리 미흡'을 비판하면서 남북한 대화 채널 복원과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전쟁을 걱정하는 이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강대강 무력 대치가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 단절된 '남북 핫라인'을 재가동하고, 중국의 북핵 문제 중재 등을 위해 동북아 교류 협력도 늘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