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정권심판론' 맞서 '운동권 청산' 띄우기…"반감만 살 수도"


'운동권 출신 野 의원 지역구' 자객 공천 이뤄지나
"이념논쟁 소환" 우려도

4월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운동권 청산론을 띄우면서 운동권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에 출마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김경률 비상대책위원.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공천 신청을 시작하면서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수도권 격전지에 도전장을 내민 국민의힘 후보들은 하나같이 "86세대 타도"를 외쳤다. 격전지 대부분이 과거 민주화운동 이력의 '운동권'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정권심판론'을 내세우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운동권 청산론'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번 총선의 성격을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으로 규정하고 연일 운동권 세력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30일 출근길에는 민주당을 향해 "정신 차리고 운동권 정치 종식에 동참하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운동권 특권 정치조차도 만족 못 하고 개딸 정치를 하려고 한다"고 맹비난했다.

전날(29일) 비대위 회의에서도 한 위원장은 운동권 세력을 향해 "자기 손으로 땀 흘려서 돈 벌어본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정치 무대를 장악해 온 사람들"이라면서 "부동산 실패와 국가채무를 무한정 늘리면서 경제를 망친 주범들이 이제 와서 운동권 심판론을 피하기 위해 민생경제론을 얘기하는 데 대해 국민은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한 위원장은 최근에는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에 나서는 국민의힘 출마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전 의원을 언급하며 "임종석과 윤희숙,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으냐"고 윤 의원이 '경제통'임을 부각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 중이다. 임 전 비서실장은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단체인 대학생대표자협의(전대협) 의장 출신의 운동권 정치인이다.

앞서 '사천논란'을 빚은 김경율 비대위원도 직접 손을 들어주며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대항마임을 부각했다. 정 의원은 강성 친명계이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사건 등 강성 운동권 출신이다. 한 위원장은 "개딸 전체주의·운동권 특권정치 등으로 변질된 안타까운 지금의 민주당을 상징하는 얼굴이 바로 정청래 의원"이라고 저격했다.

'운동권'과의 전선이 형성된 곳은 더 있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서울 영등포에 출마하며 김민석 민주당 의원과의 대결을 예고했다. 김민석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다.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김영진 민주당 의원의 경기 수원병에 나선다. 김영진 의원은 김근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의 보좌관 출신이다.

'운동권 청산' 기조에 맞춘 출마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태영호 의원은 본래 지역구인 서울 강남갑이 아닌 서울 구로을 출마를 선언했다. 구로을은 국민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다. 태 의원은 출마 선언에서 "지금은 586 운동권 정치인이 아니라 주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윤 의원을 저격했다. 호준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회장을 지낸 이인영 민주당 의원의 서울 구로갑에 출마를 선언했다.

운동권 청산론에 우려의 시각도 있다. 철지난 이념 논쟁이 중도층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이밖에 오신환 전 의원도 30일 험지인 서울 광진을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광진을은 87체제 이후 보수당이 한 번도 당선된 적 없는 지역구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4차례 당선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자리 잡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의 서울 중·성동을은 종로에서 옮긴 하태경 의원과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입인재인 전상범 전 부장판사는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자 이재명 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의 서울 강북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운동권 청산' 전략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낡은 이념을 청산한다'고 했지만 되레 이념논쟁을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층에서 '이념정치' 피로도가 쌓인 점도 문제다. 수도권에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인사는 통화에서 "이념이 초반에는 집토끼를 단속하는 전략으로 통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책으로 승부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도층은 이념 대결에 관심이 없다. 지역을 다녀보면 경제, 민생을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념 대결에만 몰두한다면 반감을 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인사는 통화에서 "운동권은 이미 한물간 이슈"라며 "이념 논쟁에서 거리가 먼 수도권·중도층에게 억지스럽게 비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제 와서 '운동권', '86 세대'라고 싸잡는 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운동권도 운동권 나름이고, 86세대도 86세대 나름"이라며 "문재인정권을 지나면서 운동권도 하나의 세력이라고 볼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보다는 공천 잡음이 생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권에서는 "국민의힘에도 운동권 출신은 많다"며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에서 운동권청산론에 대해 "민주당 586은 청산 대상이고 국민의힘 586은 영입대상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일례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운동권 출신이다.

윤 의원은 "요즘 동네를 다녀보면 다들 경제가 큰일이라고 난리다. 코로나 때보다 더 안 좋고 심지어 IMF 때를 이야기한다"면서 "그런 판국에 집권 여당이 '운동권' 운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운동권 잡을 게 아니라 물가 잡고 경제 잡아야 한다. 그게 여당의 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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