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송다영 기자] 총선을 70여 일 앞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에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격화될 조짐을 보인다. 친명(친이재명)계 비례대표 초선 의원들이 비명(비이재명)계의 '양지'를 노리는 반면, 일부 초선 의원들은 대립각으로 인한 정치 상실을 이유로 여의도를 떠날 채비 중이다. 결국 강성 지지층에 기댄 인기 영합주의 정치가 인재를 밀어내고, 계파 갈등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중 16명 가운데 10명이 경선에서 자당 후보와 집안싸움을 벌일 예정이다. 험지 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는 권인숙(경기 용인갑), 최혜영(경기 안성) 의원 두 명뿐이다(불출마 선언 4명 제외). 특히 친명계 의원들이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 하나둘씩 도전장을 내면서 당이 술렁이는 분위기다. 당의 험지에 출마해 외연 확장을 노린 역대 초선 비례대표들과 대비되면서다.
양이원영 의원은 양기대 민주당 의원(광명시을)의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양이 의원은 대표적 친명계 인사로 꼽힌다. 양이 의원은 양 의원을 두고 "이재명 당대표 체포동의안에 왜 가결표를 던지셨나"라며 "왜 자신 있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행동에 대해 밝히지 못하나"라고 했다. 또, 양이 의원은 최근 양 의원의 이름을 넣어 지역에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양이 의원의 지역 사무소에는 '기대 4년 실망 4년'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이 달린 상태다.
이수진 의원(비례)도 비명계 윤영찬 의원 지역구(성남중원)에 도전장을 냈다. 이 의원이 서울 서대문갑 출마 선언을 철회한 지 하루 만이다. 이 의원은 윤 의원을 겨냥해 "지금 성남 중원에 민주당 후보로 나오겠다는 후보는 민주당의 기본 정체성조차 없는 사람"이라며 "민주당에 배신과 분열의 상처를 주면서, 민주당 이름으로 출마하겠다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윤 의원이 과거 비명계 모임 '원칙과상식'에 몸담았던 점을 저격한 셈이다.
이외에도 친명계를 자처한 김의겸 의원은 신영대 의원의 지역구 전북 군산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한 초선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민들께서 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를 생각하면 부끄럽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민주당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과거에는 비례대표의 지역 선택 기준은 당의 험지 혹은 용퇴가 필요한 지역구, 분구 예상 지역 정도였다"며 "최근에는 당내에서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냈던 사람의 지역구가 선정 기준이 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은 초선 의원들은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어 친명계 의원들의 행보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11명 의원 중, 절반을 넘는 6명이 초선이다(오영환·이탄희·홍성국·강민정 의원 등). 소방공무원 출신인 오영환 의원은 지난해 4월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쁜,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30년 경력 증권맨 출신의 경제통인 홍성국 민주당 의원(세종갑) 역시 지난해 12월 "여야가 극렬 대립하는 정치 구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며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제거해야 하는 전쟁이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 민간 부문과는 달랐다"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같은 불출마에는 강성 지지층에 기댄 팬덤 정치로 인한 극단적 대결 구도가 원인으로 꼽힌다. 잘못된 행태를 지적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회의로 인해 재선을 포기하게 됐을 거란 분석이다.
이와 관련, 한 민주당 의원은 "현재로서 당내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끔 만드는 환경이 있다"며 "과거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더라도 의원들끼리 만나 서로 편하게 소통했던 구조가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강성 지지층에 기댄 팬덤정치 폐해가 당내 경선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며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민주당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