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천=김세정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다. 갈등설이 불거진 지 이틀 만이다. 두 사람은 대형 화재가 발생한 서천특화시장을 함께 찾았는데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상인들은 "이럴 거면 왜 왔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1시께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을 찾았다. 특화시장엔 전날(22일) 늦은 오후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점포 227개가 전소됐다. 당초 한 위원장은 이날 국회와 중앙당사를 돌며 당직자들을 차례로 만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긴급 취소하고 서천으로 향했다.
초록색 민방위복을 입은 한 위원장은 잠시 현장에서 대기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를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장동혁 사무총장, 김형동 비서실장, 정희용 원내대변인, 정진석 의원, 홍문표 의원 등이 함께 방문했다.
이후 1시 40분께 윤석열 대통령이 도착했다. 윤 대통령을 만난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공천 논란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대응 문제로 정면 충돌했던 두 사람은 이날 반갑게 조우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네는 등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한 위원장도 미소로 화답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소방관계자의 상황 브리핑을 듣고 화재 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란히 걸은 두 사람은 화재로 검게 타고 뼈대만 남은 상가 건물을 둘러봤다. 윤 대통령은 소방관계자와 대화를 짧게 나누기도 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현장을 떠났다. 함께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남으로 갈등은 봉합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다만 현장에서 대기하던 상인들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떠나자 분통을 터뜨렸다. 화재로 가게를 잃은 상인들은 거친 눈보라 속에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기다렸지만,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현장에 나온 150여 명의 피해 상인들은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를 표하고 눈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밝혔지만 시장 상황은 사뭇 달라 보였다.
화재로 날밤을 새운 상인들은 두꺼운 외투로 중무장한 채 먹거리동 2층에서 윤 대통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몇몇 이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일부 참석자들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떠난 것을 알게 된 후 상인들은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이들은 "이럴 거면 서울에서 여기까지 왜 왔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재로 가게를 잃었다는 송기숙(64) 씨는 "이거는 한참 잘못됐다. 왔으면 수고가 많다던가, 바빠서 가겠다던가 말 한마디라도 하고 가는 것이 예의 아닌가"라며 "우리는 다 불에 타서 굶어 죽게 생겼는데 위로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닌가. 밥도 못 먹고, 물도 한 모금 못 마셨다. 사람을 우습게 보니까 그냥 간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상인 A(60대) 씨는 "높은 사람이 오니까 기다리라고 해서 계속 앉아 있었다. 왔으면 위로라도 한마디하고 가야 하지 않나. 건물 탄 거 뼈대만 보고 그냥 갈 수 있는가.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서 뭘 하는가"라고 물었다. 또 다른 상인 B(60대) 씨도 "올라가라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갔는데 대통령이 안 와서 내려갔더니 먼저 갔다고 하더라"라며 "앙상한 건물 뼈대만 보러 온 건가. 저희는 어젯밤 11시부터 물 한 모금도 못 먹고 아침, 점심도 안 먹고,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씻으러 가지도 못하고 기다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