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9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노란봉투법·방송3법을 단독 처리하면서 정치권에 또다시 '거야 폭주' 늪에 빠졌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거부로 국회 본회의가 종료됨에 따라 탄핵소추안이 폐기 수순을 밟자, 오는 12월 정기국회 회기 중 또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에 대해 탄핵 카드를 꺼내든 건 이번이 세 번째로, 헌정사상 최초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검사 탄핵안도 밀어붙였다. 당장 당내에서는 총선을 5개월 앞두고 '묻지마 탄핵' 등 독주 이미지가 더해진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민주당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 위원장 외 2인(검사 손준성·이정섭)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탄핵소추라고 하는 것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고, 따라서 국회는 탄핵소추에 해당되는 대상자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되는 책무와 의무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었다"며 "탄핵소추안 발의에 이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 탄핵소추 사유로 방통위에 후임이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주요 안건을 의결함으로써 그가 방통위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방통위가 가짜뉴스 근절을 이유로 방송사에 보도 경위 자료를 요구해 헌법상 언론 자유를 침해했다고 봤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거부로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통과가 어려워졌다. 당초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방송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 24시간 만에 이를 표결로 중단시킨 뒤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국회법에 따르면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발의 후 첫 본회의에 보고되고, 보고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서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처리가 가능하다. 탄핵안 가결 요건은 3분의 1 이상 발의와 재적 의원 과반(150석)의 찬성이다. 168석의 민주당이 이 위원장 탄핵을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이 위원장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 거부하면서 표결이 무산됐다.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아 본회의가 추가로 열리지 않으면서다. 탄핵소추안은 보고 후 72시간이 지나도록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민주당은 12월 정기국회 내 다시 표결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이 위원장과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올라오니, 필리버스터를 전격적으로 철회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방송 장악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하면 이런 꼼수까지 쓰는구나 싶다"고 했다.
당장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탄핵 중독'이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근 민주당의 모습은 국민적 기대를 짓밟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아무런 불법도 없는 국무위원에 대해 끊임없이 탄핵 협박, 해임 겁박을 일삼고 정부를 비난하기 위한 정쟁형 국정조사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총선을 5개월 앞둔 상황에서 '묻지마 탄핵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대로 탄핵 카드를 다시 꺼내는 것이 총선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계산에서다. 앞서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였다가, 헌법재판소가 이를 기각하면서 국정 발목잡기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중진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위원장이 어떻게 언론 자유에 대해 심각한 침해를 했는지, 왜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탄핵이 되지 않겠나"라며 "구체적인 액션이 없었는데 대놓고 탄핵으로 때렸으면 안 됐다고 본다"라고 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탄핵은 최후의 보루"라면서 "내년 총선 5개월 앞두고 독주 이미지, 국정 발목잡기 이미지만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