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 야당 상임위원장의 간담회를 계기로 여야가 협치 정국에 들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날 국회에서 마련된 간담회 자리에서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들은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 10·29 이태원 참사 책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 등 민감한 이슈 등과 관련해 쓴소리를 이어갔다. 자세를 낮춘 윤 대통령은 "하신 말씀은 제가 다 기억했다가 최대한 국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 의장단, 여야 원내대표, 17개 국회 상임위원장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했다. 지난 5월 말 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상임위원장단 회동 논의가 무산된 후 5개월 만이다. 국회에서 대통령과 여야 상임위원장들의 간담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간담회를 시작하며 "오늘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회의 의견 등 많은 말씀을 잘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발언 후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들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여야 간 극한 대치를 보였던 민감한 사안들을 언급하면서 윤 대통령이 불편할 법한 주제들이 다수 나왔다. 특히 김민기 국토교통위원장은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변경 특혜 의혹에 대해 대통령께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대통령께서 직접 입장을 밝혀 논란을 해소해 주시면 어떨까 생각한다"며 김건희 여사를 지목, 윤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외에도 백혜련 정무위원장은 "홍범도 장군 관련 보훈부와 국방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대통령께서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김교흥 행정안전위원장은 "대통령께 간곡하게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손을 한 번 잡아주시면 그 분들 가슴이 봄 눈 녹듯이 녹을 것이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인숙 여가위원장은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지 말라.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태도를 바꿔라"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철민 교육위원장은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 자녀 학폭 의혹'을 둘러싼 학교폭력 문제 진상규명과 교권 침해 예방책 등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 위원장들 각각에게 주어진 3분 모두발언에 별다른 대답 없이 경청했다. 다만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과 관련된 질문에는 지출 조정 이유와 향후 확대 방침 등을 설명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R&D 예산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여당 의견과, 과학기술계가 위축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야당 의견을 잘 조율하고 합의해 건강한 예산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충분히 예산 심의를 해주시면 감안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심의에서 R&D 예산을 증액하면 윤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의 스킨십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담회를 마친 후 윤 대통령은 국회 사랑재 오찬 자리에서 "오늘 국회에 와서 의원님들과 많은 얘기를 해서 취임 이후로 가장 편안하고 기쁜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올해 내로 여야 상임위원장들과 만찬 자리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의 협치 제스처에 야당 내에서도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여야 순으로 호명하는 정치권의 관례를 깼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름보다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이름을 먼저 호명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전후 이 대표와 두 차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회의장을 나가기 직전 이 대표가 먼저 다가가 손을 뻗었다.
이와 관련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께서 야당 상임위원장 의견을 적극 청취한 점은 제가 충분히 감사드리고 존중한다"며 "국정기조 전환의 출발점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