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최근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논란'이 거세지면서 추가 북송 저지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북한인권 단체 등이 중국 랴오닝성과 지린성에 억류됐던 탈북민 600여 명이 지난 9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고 밝힌 데 이어 정부도 다수 재중 탈북민의 북송을 사실로 인정하면서다.
국내 북한인권단체와 활동가 등은 중국이 여전히 다수 탈북민을 수감하고 있고, 이들이 추가로 북송될 우려도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의 탈북민 북송은 '지린성변경관리조례' 등 한반도 정책과 북한과의 정치적 우호관계 등을 이유로 이뤄지는 것이니만큼 단기간 해결은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만큼 정부가 중국 측에 당당하게 할 말을 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적극적으로 강제북송 중지를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규모 북송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24일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이 개최한 긴급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탈북입국 지원활동가(정보제공자)에 따르면 항저우게임 아시안 게임 전후로 강제북송된 탈북민은 3회 합산 총 620여명"이라고 말했다. 각각 8월 29일 이후 약 80여명, 9월 18일 약 40명, 지난 9일 약 500여명이다. TJWG는 북한 국경봉쇄 해제 공식화(8월 27일) 전까지 중국 변방대 구류장·교도소에 갇혀 있던 탈북민과 북한국적 수감자는 총 2000여 명으로, 대규모 강제북송 이후 중국 교도소에 남아 있는 북한 국적 수감자를 100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정보제공자는 수백명 규모 또는 이번처럼 외부로 노출되는 북송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며 "추가 북송이 벌어지더라도 소규모로 나뉘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눈에 띄기 어려울 것"라고 예측했다. 이어 "그러나 중국 공안이 지금처럼 탈북민 체포를 계속하거나 고강도로 벌일 경우 변방대 구류장들이 탈북민들로 다시 채워질 것"이라며 "대규모 북송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국내 북한인권단체 및 활동가들도 추가 북송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등은 전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내 탈북민 350여명이 강제 송환 전 머무는 구금시설로 이달 초 옮겨졌으며, 이 가운데 180여명은 지난 9일 북송 때 포함됐다"며 "나머지 170여명은 외부 접촉을 차단당한 채로 구금시설에 남아있어 송환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부, 강제북송은 보편적 인권 문제임을 천명해야"
강제북송 문제 해결은 중국의 협조 여부에 달려있다.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를 움직여야 현실적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백범석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협약상 분명히 난민으로 인정돼야 하는 상황에서도 실제 난민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는 각국이 독자적인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해 왔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탈북민의 경우 난민의 지위 인정과 인도적 보호 여부는 결국 탈북민이 실제 체류하는 중국 정부의 의지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탈북민 강제송환 금지에 대한 법적 근거로 난민협약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중국이 가입 비준한 국제인권조약에서 유용한 법적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다"고 소개했다. 2023년 현재 중국 정부는 9개 핵심 국제인권조약 중 총 6개(인종차별철폐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아동권리협약, 사회권규약,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비준하고 있는데, 국제인권법의 경우 난민 지위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해당 조약 당사국 영토 내에 있는 개인에게 적용된다. 특히 고문방지협약 3조는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를 송환 시 받을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추방·송환하거나, 심지어 범죄인 인도까지도 명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백 교수는 "강제송환금지 원칙은 국제인권법상 확립된 국제관습법으로 인정된다"며 "수년 째 중국 정부에 국제인권법 의무 위반을 지적했지만 실제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는 탈북민 문제가 지나치게 공론화될 경우 중국 정부가 더 강력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탈북민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용한 교섭'을 최선의 방법으로 인식해 왔던 적도 있었다"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결과적으로는 재중 탈북민이 단속을 피해 지내야 하는 열악한 생활 환경이나 강제 송환에 따른 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탈북민 북송 저지 위한 정부·우리사회 역할은
컨퍼런스에서는 추후 강제북송을 막기 위해 정부와 우리사회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의견도 개진됐다. 주로 정부 차원에서 중국의 국제인권법 위반에 적극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 등이 언급됐다.
백 교수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재중 탈북민을 적극적으로 보호·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강제송환 문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양보하기 힘든 보편적인 인권 문제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며 "목표를 최소한 중국 정부가 강경책을 자제하고 탈북민의 기본적인 안전만이라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두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국제사회가 연대해 탈북민 북송저지 국제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도 국제협약에 따라 매우 당당하고 정당하게 중국에 공식적으로 탈북민 강제북송 송환 중지를 촉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성규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외교적인 노력으론 '조용한 협상이 낫다'와 '원칙을 지켜 할 말을 해야한다'는 두 가지 목소리가 있는데 둘 다 병행해야 한다"며 "한국에 있는 중국인 불법체류자 문제 등 '중국에게 가려운 부분'으로 중국과 협상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보편적 인권 차원으로 접근하는, 양면 전술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기찬 전 민주평통 사무총장도 "재중 탈북민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측면에서 필요하다면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며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 만드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서울과 베이징 간 외교채널을 통해 '탈북민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전달하고 주요국, 유엔, 비정부기구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다양한 외교채널을 가동해 관련국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각국 현지 상황에 맞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며 "외교채널을 통해 이러한 정부 입장을 계속 전달하려는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