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송다영 기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피감 공공기관·공직유관단체 약 70%가 스토킹 범죄자의 입사를 막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전주환의 신당역 스토킹 살인으로 인한 국민적 공분에도 제2의 전주환이 또다시 양산될 수 있는 제도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산자중기위 소속 양향자 의원(한국의희망, 광주서구을)이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한 결과 57개 기관 중 39개 기관(69%)이 여전히 스토킹 범죄자 입사 배제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더해 24개 산하기관(43%)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자 입사를 막을 수 있는 규정조차 없었다.
현행법상 공직유관단체는 범죄·수사 경력을 조회할 수 없다. 기관의 인사결격사유에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범죄가 명시돼야 해당 범죄자를 채용 시 필터링할 수 있다. 양향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산자중기위 국정감사에서 산중위 산하기관 57개 중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사결격사유 및 징계 규정을 가진 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일 년이 지난 시점에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범죄 관련 규정을 마련한 기관은 각각 23개, 18개로 늘어났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치라는 지적이다.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징계 규정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산하기관 34개(60%)가 디지털 성범죄 관련 징계 규정을 보유하지 않았고, 51개(90%)가 스토킹 범죄 관련 징계 규정을 보유하지 않았다.
양 의원이 산자중기위 소관기관의 스토킹 범죄자 입사 관련 문제를 지적한 배경은 지난해 9월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은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서울교통공사 여성 역무원 A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전 씨는 입사 동기인 A 씨에게 2021년 10월 불법 촬영물을 전송하며 협박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350여차례에 걸쳐 스토킹한 혐의로 고소당한 후 형사재판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고, 중형이 예상되자 1심 선고 전날 범행을 저질렀다.
전 씨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당시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었음에도 인사 채용 절차를 통과했다.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범죄가 입사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전 씨는 입사 동기였던 피해자를 351회에 걸쳐 스토킹하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와 관련 양향자 의원은 "연이은 묻지마 살인에 이어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범죄 급증으로 온 국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서 "주로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이런 범죄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범죄자가 설 곳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스토킹 범죄자의 입사를 막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하는 공공기관이 늘기는 했지만 산업 관련 공공기관의 70%가 이행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디지털 성범죄자·스토킹 범죄자의 입사를 금지시키는 전주환 방지법을 시작으로 더 이상 대한민국 공기업·공공기관에 범죄자가 발 붙일 수 없도록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양 의원은 지난 12일 '지방공기업법'을 개정해 결격사유 적용대상이 임원으로만 한정되어 있는 기준을 임·직원으로 확대시키고,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을 개정해 공직유관단체 채용 과정에서 범죄경력·수사경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전주환 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