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민족 대명절 추석 밥상머리에서 정치 이슈가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굵직한 정치 이슈가 쏟아진 데다 양극화 심화, 경기 부진, 고물가·고금리로 민생이 어려운 터라 어느 때보다 정치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또 내년에는 22대 총선도 실시되는 만큼 올해 추석 연휴에도 정치 이야기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가족과 친지끼리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겠지만, 정치 관련 대화는 자칫 갈등과 불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각자 가치관과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도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세대 간 충돌 가능성도 있다. 20·30세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개혁적이고 노년층은 보수적·안정적인 성향이 우세하다는 이념적 구분도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많이 허물어졌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지만, 여전히 60대 이상의 장·노년층은 보수 정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으로 여겨진다. 김은경 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 7월 남은 수명에 비례한 투표권 행사가 합리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노인 폄하' 논란에 휩싸였던 일도 있었다. 1000만 명에 달하는 노년층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수일까.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서 만난 70대 김모 씨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빨갱이를 때려잡고 끌려다니지 않는다. 일을 야무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적대적이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과 이재명 대표에 대해 비난했다. 70대 정모 씨는 "윤 대통령 때문에 북한이 꼼짝 못 한다"고 말했다.
10여 명의 노인 유권자는 대체로 보수 정당을 지지했다. 특징은 북한에 대한 악감정을 노출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무력 도발, 3대 세습 등을 문제 삼았다.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해 보였다. 이날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유죄를 확신하는 일부 어르신도 있었다. 또 다른 70대 김모 씨는 "유튜브에 다 나온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60대 최모 씨는 "대통령이 너무 독단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정부의 이념 논쟁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부와 여야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도 나왔다. 공무원 출신이라고 소개한 70대 한 할아버지는 "자기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움만 한다.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비난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중·노년층의 보수 성향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강하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18∼22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7.8%, '부정 평가'는 59%로 조사됐다. 그런데 60대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긍정 48%, 부정 50.4%였다. 20대(긍정 28.2%, 부정 64.5%), 30대(긍정 32.3%, 부정 65.2%)와 대조된다.
같은 여론조사의 '정당지지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 지지율은 46.1%, 국민의힘은 37.5%로 나타났다. 연령대로 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응답자 중 △40대가 68.8%로 가장 높았고, △20대 42.9% △30대 41%였다. △70대 이상은 30.7%였다. 반대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응답자 가운데 모든 연령층을 통틀어 유일하게 70대에서 50% 이상을 기록했다. 지난 18~2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정당지지도를 물은 결과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맞물린 정서와 다양한 경험에서 정립된 가치관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영 휴먼앤데이터 소장은 통화에서 "60대 후반부터 산업화 시대를 겪었고 가부장적인 정서가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60·70층은 자기 삶의 불안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도 있다"고 말했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중·노년층은) 여러 중첩된 경험이 쌓이면서 근본 틀이 형성된 연령대이고, 풍파를 겪은 세대이다 보니 젊은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이분법적으로 보수·진보·중도를 진영을 갈라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한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