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교류 시도에 대해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다.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직접적으로 비판 메시지를 냈다. 취임 2년 차 미국, 일본 등 자유 진영 국가들과의 연대 강화 흐름 속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향해 1년 전보다 선명한 입장을 밝힌 모습이다. 아울러 개발·기후·디지털 등 3가지 글로벌 격차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ODA(공적개발원조) 예산 확대, 녹색기후기금 재정 공여 확대, 무탄소에너지 활용 국제 플랫폼 구축 등 구체적인 지원 방향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45시께(한국시간 21일 오전 2시 45분) 유엔총회 본회의장 연단에 섰다.
먼저 2024-2025년 임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안보 문제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공약한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해 안보, 인도, 재건 등 포괄적 지원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내년에 3억불, 추가 20억불 이상의 중장기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앞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이어 거듭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교류 시도는 불법적이라면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촉구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세계평화의 최종적 수호자여야 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다른 주권국가를 무력 침공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정권으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며 러시아를 직격했다.
이어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면서 북러 밀착 움직임의 위험성을 국제사회에 환기했다. 이는 지난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했을 뿐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된다.
윤 대통령은 또한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위협과 불법적 군사 거래에 대한 자유진영 국가의 관심과 연대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19일(현지시간) "현재로서는 제재의 리스트를 추려보고, 또 실효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을 엄밀하게 고려해 봐야 되기 때문에 동맹 우방국들과 이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했다. 이어 "동맹국, 우방국을 중심으로 자유의 연대 속에서 응집된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엔 차원에서 관련한 제재나 공동 대응 방안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정상들 중 이번 총회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만 참석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추가 제재 결의안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결의안을 계속 거부해 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또 국제사회의 복합 위기 속에서 개발·기후·디지털 분야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문제제기하고,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 방향을 밝혔다. 우선 내년 공적개발원조(ODA) 정부예산안 규모를 40% 이상 확대했다고 강조하면서 수원국 맞춤형 개발협력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후위기 취약국들의 탄소 배출 감축과 청정에너지 전환을 돕기 위해 녹색기후기금(GCF)에 3억불을 추가 공여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이와 함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수소, 탄소포집저장 등 고효율 무탄소에너지(CFE : Carbon Free Energy)도 적극 활용하겠다면서 무탄소에너지 공유 국제플랫폼인 CF연합(Carbon Free Alliance)을 결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 선진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한 가운데,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RE100 이니셔티브'는 기업의 부담 등 한계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무탄소에너지 공유'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CF연합 결성을 예고한 것이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제안한 CF 연합 이니셔티브가 본격 추진되면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원전과 수소자동차, 수소연료전지의 시장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우리의 수출과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 대통령은 또 한국의 강점인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개도국들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동시에 글로벌 디지털 규범 형성과 AI 거버넌스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아울러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2030 세계박람회 개최 후보지로서 부산의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설명하고 유치 지지를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70여 년 전 공산 세력의 무력 침공을 받아 한반도의 대부분이 점령당했을 때, 대한민국 자유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한 도시"라면서 "그동안 이루어 낸 성장과 발전의 경험을 국제사회와 널리 공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돌려드리고자 한다. 2030년 부산 엑스포는 세계 시민이 위기와 도전을 함께 극복하면서 자유를 확장해 나가는 연대의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유엔총회장에는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비롯해 박진 외교부 장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황준국 주유엔대사 부부, 김은혜 홍보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장성민 미래전략기획관, 이충면 외교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김 여사는 특별석 1열에 앉아 수행원 1명과 함께 윤 대통령 연설을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