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단식 만류한 文, 현실 정치 거리 좁히기?


文, 李에 "다른 모습으로 싸우는 게 필요"
정치 쟁점 현안 메시지 내며 존재감 키워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방문해 단식 도중 건강악화로 입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와 거리를 좁히는 모습이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치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고 강조하며 정치와 선을 그은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잊혀진 삶'을 공언했던 것을 어기고 있다는 비판과 전·현 정부의 신구 갈등이 극에 달해 소환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은 19일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해 입원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지난해 5월 퇴임한 이후 처음으로 상경해 이 대표를 찾은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상징적 의미에 더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이 대표에게 단식 중단을 설득하면서 출구를 열어주는 명분도 세우게 됐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의 단식 투쟁 일선에 등판하면서 지지층 결집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 등을 받는 이 대표에 대해 배임·뇌물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한 다음 날, 문 전 대통령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싸우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했다. 이 대표의 대정부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읽힌다.

문 전 대통령은 단식 이틀째인 지난 1일 이 대표와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 건강을 잘 챙기라"는 취지로 격려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폭주한다는 표현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당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내년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고, 범야권의 세력을 모으는 작업의 일종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대표의 단식과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범야권의 결집 효과, 특히 비명(비이재명)계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와 거리를 좁히는 모습이다. 사진은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이 대표, 박광온 원내대표가, 고민정 최고위원이 지난 5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책방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 뉴시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에 관해서도 대통령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육사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며 "철거 계획을 철회해 역사와 선열에 부끄럽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에도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냐"면서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부디 숙고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2021년 8월 집권 당시 연해주 이주 뒤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 장군의 유해를 최고 예우로 직접 맞이한 바 있다.

또한 문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면서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부실 운영 논란이 일었던 새만금 세계잼버리스카우트대회에 대해서는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라면서 실패를 거론했다. 퇴임 이후 주로 책을 추천하거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해 왔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은 최근 감사 결과,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관계자들이 가담해 주택가격과 가계소득, 일자리 통계를 조작했던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고, 태양광 둘러싼 한전 내부의 각종 비리와 이권 카르텔에 대해서도 파헤쳤다. 감사원이 전 정부에 대한 굵직한 건수를 올릴 때마다 국민의힘은 전 정부와 민주당에 향해 맹공을 퍼붓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현 정부 들어 전 정부를 겨냥한 전방위 수사를 벌여왔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의혹,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부당 개입 의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을 수사해 문 정부 출신 인사들을 기소했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를 '반국가세력'이라고 지칭한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의 행보가 부쩍 두드러진 상황에서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문 전 대통령에게도 지혜를 구하라"고 제안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문 전 대통령을 현실 정치로 소환하는 계기 마련으로 해석되기 때문. 이 전 교수는 "잊혀지고 싶다는 본인의 유명한 말이 말장난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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