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가 '국가 재정' 망쳤다? 글로벌 통계는 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특수성 무시…G7 부채 증가율 더 높아
'건전 재정' 강조하며, '전 정권 탓'하는 尹정권의 역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 채무가 400조 원 증가했다며 현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성을 무시한 발언이며, 윤석열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와 맞지 않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국가 채무가 400조 원 증가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우리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건전 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 그 결과 치솟기만 하던 국가 채무 증가세가 급격하게 둔화됐다."(윤석열 대통령, 8월 29일 국무회의 발언)

"망하기 전 기업을 보면 아주 껍데기는 화려하다. 그런데 그 기업을 인수해 보면, 안이 아주 형편없다. (중략)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부를 담당해 보니까, 우리가 지난 대선 때 힘을 합쳐서 그야말로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며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하는 정말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든다."(윤 대통령, 8월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발언)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재정 관련 발언을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가 부채를 400조 원 이상 증가시켜 국가 재정을 망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 국가 채무는 2022년 1068조8000억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첫해인 2017년(660조2000억 원) 대비 408조6000억 원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EU(유럽연합) 등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 비율 상한선을 60%로 설정하고 있는 상황에 비춰보면, 총량적인 관점에서 아직 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을 양호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국가 부채 증가율, OECD 회원국 중 낮은 수준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 비율은 △에스토니아 17.60% △룩셈부르크 24.29% △칠레 36.29% △덴마크 36.63% △스웨덴 36.81% △튀르키예 41.80% △체코 42.02% △스위스 42.07% △노르웨이 43.41% △리투아니아 44.66% △라트비아 45.7% ▲한국 51.33% △네덜란드 52.33% △폴란드 53.79% △아일랜드 55.33% △호주 58.38% △슬로바키아 63.07% △콜롬비아 64.60% △핀란드 66.19% △이스라엘 67.95% △코스타리카 68.71% △독일 69.64% △슬로베니아 74.43% △헝가리 74.43% △아이슬란드 74.60% △오스트리아 82.88% △영국 103.79% △벨기에 108.4% △프랑스 112.58% △캐나다 112.85% △스페인 118.55% △포르투갈 127.43% △미국 128.14% △이탈리아 150.83% △그리스 199.40% △일본 262.49%(멕시코·뉴질랜드는 데이터 없음) 순이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OECD 36개국 중 12번째로 낮다.

또한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 채무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기 부양 및 확장 재정이 필요했다는 시대적인 영향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40.05%였던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 비율은 2018년 40.02%, 2019년 42.13%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이후 상승폭을 키웠다. 팬데믹 첫해인 2020년 48.70%로 전년 대비 6.57%포인트(P) 급증했고, 2021년엔 51.33%로 또다시 2.63%P 늘었다. 팬데믹 직전과 비교하면 2년 새 9.2%P 국가 채무 비율이 증가했다.

팬데믹 시기 우리나라만 국가 채무 비율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주요국은 모두 팬데믹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 재정 정책을 펼쳤다. OECD 회원국 중 국가 채무 비율이 가장 낮은 에스토니아는 2019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8.55%에 불과했으나 2021년 17.6%로 9.1%P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세계 7대 주요 선진국(G7)은 우리나라보다 국가 채무 비율 상승폭이 더 컸다. △일본은 2019년 236.28%에서 2021년 262.49%로 '26.21%P↑' △캐나다는 2019년 87.16%에서 2021년 112.85%로 '25.69%P↑' △미국은 2019년 108.76%에서 2021년 128.14로 '19.38%P↑' △영국은 2019년 84.85%에서 2021년 103.79로 '18.94%P↑' △이탈리아는 2019년 134.14%에서 2021년 150.83%로 '16.69%P↑' △프랑스는 2019년 97.43% 2021년 112.58로 '15.15%P↑' △독일은 2019년 58.90%에서 2021년 69.64%로 '10.74%P↑' 국가 채무 비율이 늘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팬데믹 시기 전 세계 주요국이 모두 위기 극복을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치면서 돈을 풀었고, 국가 부채 비율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팩트"라며 "팬데믹 시기 국가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고 국가 부채가 늘었다고 전 정부의 재정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현 정부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선전)"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이어 "더 중요한 것은 팬데믹 때 문재인 정부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재정 지출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다른 나라가 자국민에 현금 지원을 할 때 우리나라는 국가 부채가 많이 늘어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융자 지원 위주 정책을 펼쳤다. 당장의 재정 지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었지만,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낮은 융자 지원을 하고, 현재까지 만기 연장으로 해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과 영업금지·제한 조치로 막대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에 '빚내서 견뎌라'는 식의 잘못된 대책을 펼쳤고, 이게 채무자 및 금융기관에 폭탄이 되어 곧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문재인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더팩트 DB

◆만기 연장으로 폭탄 미루는 '자영업자 부채 증가'가 더 문제?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33조7000억 원으로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 말(684조9000억 원) 대비 50.9% 급증했다. 이에 보고서는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대출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고금리, 경기 둔화 등 경제 여건 악화로 그동안 낮은 수준을 유지하던 연체율이 상승 전환함에 따라 자영업자 부문의 누적된 잠재 부실이 단기간 내 현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며 "향후 고금리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예상 밖의 경기회복 지연, 상업용 부동산 부진 등이 발생할 경우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연체 규모가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자영업자 대출 중 잠재 부실 위험이 높은 대출에서 연체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지 않기 위해선 단기적으로 연체 우려가 높은 취약차주에 대해서 '새출발기금' 등을 통한 채무조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소득이 회복된 정상 차주의 경우 자발적인 대출 상환을 유도하고, 자영업자 부채 구조를 단기에서 장기로, 일시상환에서 분할상환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책이 국제적인 흐름과 괴리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팬데믹이 끝난 후 많은 나라가 긴축 재정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안 하고 있다"며 "올해 계획도 '적자 재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이후 재정 적자가 많이 생기는 나라가 없는데, 우리는 수십조 원 규모의 적자 재정이다. 이러면서 재정건전성을 입에 담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도 "현 정부는 건정 재정을 말하면서 감세 정책을 펼친다"며 "재정을 건전화하겠다는 정부가 지출보다 세입을 축소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감세 정책으로 '적자 재정' 지속

기획재정부 재정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통합재정수지는 총수입 617조8000억 원, 총지출 682조4000억 원으로 통합재정수지는 -64조6000억 원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기금, 고용보험기금,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의 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117조 원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 투자대책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도 적자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올 6월 기준 재정수지는 총수입 282조3000억 원, 총지출 337조7000억 원으로 통합재정수지는 -55조4000억 원이며, 관리재정수지는 -82조9000억 원이다. 이런 적자 재정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기재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주요 내용'에 따르면 내년(2024년) 예산의 총지출은 656조9000억 원, 총수입은 612조1000억 원이다. 통합재정수지는 -44조8000억 원, 관리재정수지는 -92조 원이다. 내년에도 90조 원이 넘는 재정 적자가 예정된 셈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팬데믹 이후 세금을 올리면서 긴축 재정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에 이르는 전방위적 감세 정책을 펼쳤다"며 "이른바 부자 감세를 하면서, 지출은 조금 줄였기 때문에 대규모 적자 재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1853조9000억 원(올 1분기 말 기준)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국가 재정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가계부채는 금리와 관련성이 깊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금리를 낮추면 주택담보대출이 늘어서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커진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는 게 중요한 데 현 정부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오락가락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과반은 주택담보대출(1017조9000억 원, 가계부채의 약 55%)이다. 주택은 부채이면서, 자산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산 가치(주택 가치)가 (대출액보다) 높으면 별문제가 없다. 주택가격이 폭락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현재로선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아 가계부채가 터지는 것을 막고, 한계기업 및 소상공인 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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