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반국가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히며 순방길에 오른다. 최근 보수 정당의 '이념 정립'을 강조하고,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한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친북단체 주최 행사에 참석한 야권 국회의원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정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관련,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계획 철회를 공개 요청하고 대통령실은 이를 일축하면서 정치권 이념 논쟁은 전·현직 대통령 간 대결로 확전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논란을 뒤로 하고 오는 5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순방길에 오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친북단체 주최 행사에 참석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앞서 윤 의원은 지난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에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개최한 '간토대지진 100년 조선인 학살 추도식'에 남측 대표단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이 직접 윤 의원 행위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이른바 조총련은 우리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상에 반국가단체라고 확정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면서 "국민의 세금을 받는 국회의원이 반국가단체 행사에 참석해 '남조선 괴뢰도당'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끝까지 앉아있는 행태를 우리 국민이 어떻게 이해하겠나"라고 했다. 이어 "헌법가치를 정면 부인하는 세력을 함께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불 수 있나. 이 문제는 좌우 진영의 문제도 아니고 헌법 가치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날 윤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윤 의원 제명 협조를 압박하고 나섰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김정은을 추종하는 집단의 행사에 참석해 '남조선 괴뢰도당'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 반국가 단체에 동조한 윤 의원은 국회의원직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격조차 없다"고 비판한 뒤, 민주당을 향해 "침묵은 암묵적 동의다. 민주당이 윤미향 의원의 반국가행태에 동조한 게 아니라면 국회의원 제명 등 단호한 조치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이념 논쟁'은 전·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진영 대결로 불붙은 양상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육사(육군사관학교)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다"면서 정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을 철회해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전직 대통령이 지나치게 나서는 게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비공개회의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 "한번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참모들에게 직접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임 대통령의 요청을 일축하고, 야권 국회의원의 친북단체 행사 참석을 문제 삼아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면서 정치권 이념 대립이 첨예해지는 모습이다.
다만 '이념 대립'을 부각하는 행보가 대통령 지지율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미디어트리뷴 의뢰, 8월 28일∼9월 1일 기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05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보다 2.2%p 하락한 35.4%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지난주보다 1.7%p 오른 61.1%로, 한 주 만에 다시 60%대로 나타났다. 특히 핵심 지지층인 60대(2.7%p↓)과 보수층(1.4%P↓, 63.2%→61.8%)에서도 긍정 평가가 하락했다. 이 같은 지지율 하락세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 윤 대통령의 '이념' 강경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현안을 뒤로 하고 5일부터 11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인도네시아, 인도를 차례로 방문한다. 순방 기간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아세안+3(한일중)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3개 세션으로 구성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14개의 소 다자회의 및 양자회담을 갖는다.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이 안보는 물론 경제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도운 대변인은 "대통령은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도, 인도네시아·인도 순방도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라며 "정상회의에서 안보를 굳건히 다지는 것도 결국은 시장을 넓히고 외국과의 산업 협력을 공고히 함으로써 우리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글로벌 차원에서는 강대국 간에 지정학적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고 가치, 이념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는 국익 차원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고, 또 우리의 실용 네트워크, 비즈니스 외교를 확장하는 데 이 두 나라(인도네시아, 인도)가 상당히 중요한 거점 지역"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