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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회가 생산적이지 않고, 정쟁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의 핵심적인 역할인 '입법'과 관련해 정량적 활동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가 생산적이라고 여기는 국민은 거의 없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최근 10년 연속 꼴찌를 기록(2022년 기준 24.1%, 40% 이하는 국회가 유일)한 곳이 바로 국회다. 국회 신뢰도가 낮은 것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입법 활동, 잊을만하면 터지는 국회의원들의 각종 비리와 비위 행위, 민생은 뒷전이고 정쟁에 주력하는 모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다른 주요국 의회와 비교하면 우리 국회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더팩트>가 우리 국회와 미국·영국·프랑스 의회의 생산성을 비교·분석했다. 나아가 제대로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헌법기관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 등 여러 특혜와 각종 수당, 업무에 필요한 인원 및 용품 등을 국회로부터 지원받는다. 급여(세비)를 비롯해 인적·물적 지원에 대한 모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따라서 의원들은 입법부 일원으로서 국민이 부여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매우 낮다. '일하지 않는 국회' 인식이 강한 탓인데, 의원들이 받는 대우는 선진국 의회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의원 연봉 1.5억…각종 수당까지 '혈세'로
24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올해 의원 연봉은 각종 수당을 합쳐 1억5426만 원이다. 구체적으로 매월 기준 일반수당은 약 690만 원이다. 여기에 관리업무수당 약 62만 원, 정액급식비 14만 원이 지급된다. 또 매년 1월과 7월 두 차례 일반수당의 50%인 약 345만 원의 정근수당과 설·추석에 각각 일반수당의 60%인 약 414만 원의 명절휴가비를 받는다.
이뿐 아니라 각 의원에게 각종 경비도 지원된다. 입법기초자료 수집·연구 등 입법 활동을 위해 지급하는 경비인 입법활동비는 매월 313만 원, 회기 중 입법 활동을 특히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경비인 특별활동비는 78만 원이다. 이러한 수당을 모두 합한 월 평균액은 1285만 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의 월 평균 소득은 333만 원이다.
국민이 직접 뽑은 선출직 공무원인 의원은 입법부 고유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의원에 대한 다양한 재정적 지원을 보장받는다. 이는 국회가 각종 수당을 지원함으로써 입법 활동을 보장하는 한편 여러 집단으로부터 대가성 청탁 등 부정을 방지하는 차원도 있다. 하지만 의원 본연의 업무에 대한 수당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서실운영비(18만 원) △차량 유류비(110만 원) △차량 유지비(35만 원) △전화·우편 등 공공요금(95만 원) 등도 매달 정액 지원된다. 이에 더해 의원실 신청에 따른 사후 지급되는 △공무수행 출장비 △입법 및 정책개발비 △정책자료 발송료 △의정 안내 문자메시지 발송료 △보좌직원 매식비 △의원실 업무용 택시 등을 합하면 재정 지원 총액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구속 등 사유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의원도 계속 수당을 지급받는다. 국회의원수당법에는 현직 의원이 직무로 인해 신체에 상해를 입거나 질병 등으로 사망할 때를 제외한 다른 지급 불가 사유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 18일 실형을 확정 받은 정찬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직을 잃기 전 꼬박꼬박 국회의원 수당을 받아 논란이 됐다.
본회의 결석 등 제대로 된 의정 활동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임에도 '지급 중단'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여야는 굵직한 이슈를 두고 정쟁에만 몰두하면서 입법 추진에 뒷짐을 지고 있다. 사실상 국회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의원들이 일반 직장인 고액 연봉에 해당하는 수당을 챙기도록 방치하는 셈이다.
김태일 참여연대 권력감시1팀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형사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기에 단순하게 의원이 구속됐다고 해서 그 기간 세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정상적으로 의정 활동을 했는지 못했는지에 따라 급여를 주는 게 맞지만, 구속되면 실질적으로 의정 활동을 못 하기에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美 상·하의원 2.3억…英·佛, 韓과 비슷한 수준
주요국 의회의 의원이 받는 세비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양원제를 채택하는 미국 의회는 상·하원으로 나뉜다. 의회 구성은 각각 상원의원 100명, 하원의원 435명으로 이뤄져 있다. 상·하원 의원은 연간 17만4000달러(약 2억3293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그 이외도 각종 수당을 받는다. 각 의원은 그 명목과 관계없이 지급된 수당의 총액을 재량에 따라 지출할 수 있다. 예컨대 보좌직원을 적게 고용하거나 사무실 유지 비용을 아껴서 남은 수당을 출장비 등 다른 용도로 재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영국 의회는 지난달 26일 기준 상원의원이 781명, 하원의원은 650명으로 구성돼 있다. 명예직인 상원의원과 달리 선출직인 하원의원은 2022년 기준 연간 8만4144파운드(약 1억4132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한국 국회의원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지만, 각종 수당은 제외된 금액이다. 하원의원은 사무실수당 등 여러 유형의 수당도 지급받는다.
프랑스 의회는 상원 348명, 하원 577명의 의원으로 구성됐다. 상하원 의원의 연봉은 지난해 7월 1일 기준 8만9920유로(약 1억3134만 원)로, 한국 국회의원 세비와 비슷한 수준이다. 의장,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에는 직책별로 추가 수당이 지급된다. 이 외에도 의원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 중 의회가 보전해주지 않는 일체의 경비를 지원하기 위한 수당인 운영경비수당이 매월 약 5770유로(약 842만 원)가 지급되며, 통신수당과 퇴직수당 등도 지원된다.
◆의원당 보좌직원 9명까지…'임면권'은 공통
우리나라 의원은 국회의원수당법에 따라 보좌직원(4급 2명, 5급 2명, 6~9급 각 1명) 8명과 인턴 1명을 둘 수 있다. 이들 인건비 역시 국가가 부담한다. 국회의원 정원이 300명임을 고려하면 보좌직원은 모두 2700여 명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기준 의원 1인당 9명의 보좌직원 인건비 소요액(추정)은 약 5억1100만 원이다. 보좌직원의 월정급여와 상여금, 임금상승률 등을 적용해 산출한 것이다. 의원은 보좌직원을 채용·면직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진다.
미국 의회는 우리 국회와 조금 다르다. 미국 의회의 보좌진수당은 상원의원이 대표하는 주(州)의 인구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올해 회계연도 기준 연간 보좌진수당의 상한액과 하한액은 각각 486만8411달러(약 62억6360만원)와 309만1914달러(약 41억3388만원)다. 각 상원의원은 이 범위 안에서 보좌직원을 재량에 따라 고용하되, 보좌직원 1인의 연간 급여액 상한은 20만3700달러(약 2억7234만 원)로 정해져 있다. 상원의원은 보좌직원과 개별적으로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보좌직원에 대한 임면권을 갖지만, 보좌직원은 별정직공무원 신분인 우리나라와 달라 (연방)공무원이 아니다.
하원의원들에게도 보좌진수당이 동일하게 지급된다. 다만 규모는 2022년 기준 연간 99만4671달러(약 13억2987만원)로, 상원의원 보좌진수당의 하한액보다 적다. 연방하원의원은 이 범위 안에서 보좌직원을 재량에 따라 최대 18인까지 고용하고, 각 보좌직원의 근무 장소(수도 또는 지역구)나 형태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단, 보좌직원 1인의 연간 급여액 상한은 20만3700달러로 정해져 있다.
영국 의회의 보좌진수당은 하원의원에게 지급되는데, 지역구가 수도인 런던인지 여부에 따라 지급되는 수당액이 다르다. 런던을 지역구로 둔 하원의원은 지난해 기준 보좌진수당으로 19만750파운드(약 3억2073만 원)를 받는다. 그 외 지역구는 17만9330파운드(약 3억152만 원)가 지급된다. 총액 안에서 몇 명의 보좌직원을 고용할 것인지는 미국과 같다. 영국 의회는 보좌직원들에게 주로 회기나 의사일정의 지원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 국회와 비슷하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해 7월 기준 상하원 의원에게 매월 약 8697유로(약 1270만 원)의 보좌진수당이 지급한다. 상하원 의원은 1~5명의 보좌진을 개별적으로 채용할 수 있으며, 그 고용 여부는 마찬가지로 개별 의원의 재량에 따른다. 단, 보좌직원은 학사 이상 학위소지자이거나 15년 이상의 전문 경력이 있어야 하고, 의원의 직계 가족 채용은 제한된다. 2022년 1월 1일 기준 보좌직원의 평균 보수월액은 3697유로(약 540만 원)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는 정치적·사회적 문화와 사회복지체계의 수준 등에 따라 서로 다르다. 의원내각제는 의회와 내각의 정보공유가 상대적으로 원활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삼권분립을 엄격하게 채택하는 나라는 보좌직원들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는 점에서 상이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국회, 온갖 특권과 지원에도 국민 신뢰 '바닥'
주요 선진국 의회 못지않은 급여 수준과 각종 의정활동 지원에도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크다. 여야가 민생보다는 정쟁에만 치우쳐 입법부로서의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국민 정서다. 김태일 팀장은 "의원들은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다른 상임위원회의 법안에 대해 크게 관심들이 없다"면서 "상임위-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의 단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논의 내용이 단출해지고 잘 검토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 들어 여야가 앞다퉈 특권 폐지와 정치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헛구호에 그치는 실정이다.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국민이 속속들이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회의나 상임위(소위 포함) 회의는 회의록이 공개되고, 당직을 맡은 의원들도 노출이 되지만, 그 외 의원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직접 공개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 정서와 시대 흐름에 맞게 일하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높지만, 국회 자구 노력은 형식상이다. 의원의 저조한 회의 출석률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내용의 법안과 국회의원이 구속돼 의정 활동을 할 수 없는 동안에 수당 등의 지급을 전액 제한하자는 취지의 법안 등과 같은 법안은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의원의 입법 환경이 주요 선진국 의회에 뒤지지 않는 수준인데도, 국회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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