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설상미 기자] 고(故)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싼 여야의 진실공방이 맹탕 수준에 그쳤다. 여당은 박정훈 대령의 항명 여부를 따져 물었고, 야당은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이첩 결재 번복 배경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런 가운데 김의겸 민주당 의원의 '해병대 수사 기밀' 공개 파장으로, 여당은 즉각 수사를 촉구했다.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현안질의를 진행했다. 국방위에서 이종섭 장관은 현안질의에 앞서 "특정인을 제외하라거나 특정인들만 포함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다"라며 외압 의혹을 적극 부인했다.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 8명이 혐의자로 포함된 수사 보고서를 승인한 후 번복한 배경에 대해 "당일 해병대 수사단 차원의 조사라는 점을 고려해 보고서에 결재했고, 다음날 보고 간 제기된 의견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국회·언론 설명 취소와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이 장관은 "해병대 사령관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수사단장에게 명확하게 지시했다. 수사단장의 행위는 해병대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한 중대한 군기 위반으로, 군의 지휘 약화시켰다"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항명 사건을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 역시 국회 법사위에서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국방부의 그 누구도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특정인을 제외하라거나 특정인들만 포함하라는 등의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라며 "저 또한 그 어떤 문자도 해병대 사령관에게 보낸 사실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국방위 현안질의에서 야당은 이 장관의 이첩 보류 배경과 외압 의혹에 관해 집중 추궁했다. 이 장관은 일관적으로 "외압은 없었다"며 결재 당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후에 번복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24시간도 안 돼서 결재했던 내용을 왜 번복했느냐"고 묻자, 이 장관은 "여단장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를 했고, 초급간부들은 같이 고생했는데 살아남았다고 죄인이 돼야 하느냐 이런 식으로 문제 제기했다"라며 "그날은 보고를 했기 때문에 수고했다고 결재를 했는데, 다시 다른 일정을 보고 받으면서 그런 문제에서 다시 짚어봐야겠다 해서 다시 급하게 보류시켰다"고 답했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은 "확신이 없는데 장관님이 결재를 하느냐"라며 "얼마나 중요한 결재인데 그것을 번복을 하냐"고 비판했다. 이에 이 장관은 "외압은 없었다"라며 "결재할 때도 확신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7월 31일 이첩 명령을 하고, 8월 1일 오전, 오후에 각각 지시를 했다"라며 "호떡 집에 불난 장면이 떠오른다. 뭐가 그리 다급해서 오후에 또 하고, 다음날 또 하고 그랬느냐"라며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이 대표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으려면, 범죄사실을 특정해야 하는데, 압수수색 영장을 보니깐 항명에 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라며 "수사단장 압박하기 위해 엉터리 영장으로 압수수색 한 것 아니냐"라고 몰아세웠다.
윤후덕 민주당 의원 역시 "대한민국 장관이 20시간 사이에 생각을 바꾸어서, 스스로 결재한 것을 허당으로 만들고 있다"라며 "장관이 국기문란을 벌이고 있다"고 힐난하자, 이 장관은 "허당이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장관에게 보고돼서 재검토를 지시하게 되면 독립성 훼손이다. 군사법원법을 보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경찰 등 민간에 지체없이 이첩하라고 돼있다"라며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동기가 있느냐. (항명을 한다고 해서) 이 사람에게 이득이 있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이 장관은 "(항명) 배경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수사 진행 중이라 말씀드리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박정훈 수사단장 항명에 집중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박 전 단장이 참석한 참모 회의에서 해병대 사령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한 뒤 사령관이 그 지시를 번복한 적이 없는데도 이첩을 했다면 당연히 항명"이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수사단장도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굳이 이첩 보류 명령을 어기고 성급하게 보내야 할 이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김의겸 민주당 의원의 '해병대 수사 기록' 관련 서류를 공개해 여당 의원들의 항의와 즉각 수사를 촉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 의원은 오전 전체회의에서 "제가 지금 수사기록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해병대) 병장들이 한 진술이 있다"라며 채 상병과 함께 물에 빠진 장병들이 진술한 내용이 담긴 문건을 읽었다.
이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수사기록이 해병대에서 아마 지금 조사한 조사기록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공개될 수 없는 자료고 아직 경찰에 이첩도 되지 않은 자료인데, 그 자료 내용이 진술 내용까지 유출돼서 상임위 현장에서 질의자료로 활용됐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입장문을 내고 "수사 관련자가 민감한 수사 기록을 통째로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에게 넘기는 것은 공무상 기밀유출죄에 해당하며, 특히 군의 기강 차원에서도 일벌백계해야 한다"라며 즉각 수사를 촉구했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도 "수사기록은 보지 못한 것이며, 김 의원의 수사 기록 유출이 중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 조사본부는 기존 8명이 아닌 대대장 2명에 대한 범죄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다. 임성근 1사단장을 포함,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판단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와 달라 외압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