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서울 서초구 소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발생하고서야 국회가 부랴부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무너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국회도 법안을 발의하며 동참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11월을 끝으로 현재까지 관련 법안 심사는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교육 활동 보호 관련 법안은 모두 8건이다. 세부적으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5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2건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1건 등이다. 이 중 교원지위법은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논의된 바 있다.
교원지위법은 '교육 활동 침해 학생·학부모를 교사와 분리' '교육 활동 침해 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 '교육 활동 침해행위 인지 시 관계 기관에 신고' '교육 활동 침해 정도에 따라 출석 정지 조치 후 거부·회피 시 징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2021년 7월 5일(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2022년 8월 18일(이태규 국민의힘 의원), 2022년 9월 28일(서정숙 국민의힘 의원), 2023년 3월 14일(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2023년 6월 1일(강득구 의원) 등 모두 다섯 차례 발의됐다.
이 가운데 '강득구(2021년)·이태규·서정숙' 법안은 지난해 11월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논의를 거쳤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다 현재까지 추가 논의를 갖지 않았다.
당시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세부 내용은 △교육 활동 침해 행위를 해당 학생 생활기록부에 기재 △교육 활동 침해 학생과 교사 분리 △교육 활동 침해행위 형사고발을 의무사항에서 재량사항으로 변경 등이었다.
지난해 11월 24일과 같은 달 29일 열린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장상윤 교육부 차관과 천우정 전문위원은 교육 활동 침해 학생에 대한 조치로 그 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하는 데 찬성했다. 교육 활동 침해 행위를 억제·예방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침해 행위의 기준을 '하위법령으로 정하는 중요한 경우'로 한정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중대한 교육 활동 침해의 경우에만 생활기록부에 작성하자는 것이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활기록부에 '교권을 침해했던 놈이야'라고 남기는 건 낙인 효과가 있다"며 "이미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는데, 생활기록부에까지 기재하는 건 명백한 이중 처벌"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면서 "(교육 활동 침해 행위가) 발생한 것 자체만으로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굉장히 어려운 관계가 생기는데, 생활기록부에 낙인까지 되는 방식이라면 교사와 학생은 원수 중에 상원수가 될 것"이라며 "고등학생의 경우 입시와 관련된 자료로 생활기록부가 쓰이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아이들이니까 실수하거나 착각할 수 있는데 무조건 다 기록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도저히 우리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들이 있을 건데, 그 행위는 아이들이라도 저는 용서하면 안 된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또 "그걸 용서하게 되면 교권 침해는 물론이고 다른 선량한 다수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엄격하게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활동 침해 학생과 교사 분리' 건의 경우 교육부와 전문위원은 모두 찬성 의사를 표했다. 분리 조치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피해 교원 상당수가 특별 휴가 또는 병가를 사용하거나 학급 교체 등을 신청하고 있어서다. 다만 분리 조치 된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을 마련해 운영하자는 단서를 달았다.
이에 서동용 민주당 의원은 "교육 활동 침해 학생과 교원을 분리하는 취지에는 백번 동감한다"면서도 "그렇게 분리 조치를 하면 학생의 학습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반대했다.
서 의원은 교육 활동 침해행위 형사고발을 의무사항에서 재량사항으로 변경하는 강득구 민주당 의원의 안에 대해서는 "형사고발 재량화가 맞다고 생각한다"며 "기계적인 고발은 쌍방 사이의 조정과 화해 가능성을 다 닫아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찬성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서울, 경기, 울산, 전남 교육청 및 한국교총, 대전·전남 교사 노조는 "수사기관 의무 고발 규정을 재량으로 변경한다면 교원 보호가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고, 이날을 끝으로 논의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 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생활기록부 기재, 학생과 교사 분리 등도 명문화되지 못했다.
지난 21일 교사노동조합연맹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법을 통한 교권 회복을 촉구했다. 이들은 "제발 학생들을 가르치기 두렵다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며 "선생님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교육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 수백 건의 법안이 계류돼 있어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며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한 만큼 하루속히 법안을 통과시켜 교권 추락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교육 활동 침해행위 발생 건수는 △2018년 2454건 △2019년 2662건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 등이다. 매년 평균 21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는 뒤늦게 오는 28일 교육위 전체회의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