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헌법 개정 이슈가 제헌절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정치권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는 개헌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내년 4월 총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정치권 안팎에선 현실적으로 개헌 논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제75주년 제헌절 기념식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국무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3개 항에 국한해 헌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헌은 '최소 개헌'을 원칙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최소 개헌을 원칙으로 삼아 다가오는 총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왕적 권력구조를 개편해 균형 있는 권력이 작동하도록 하고, 의원 특권 폐지 요구를 반영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시기적으로 총선이 약 9개월 남은 점과 여야 간 정쟁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포괄적 개헌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점에서 김 의장은 현행 헌법의 문제로 꾸준히 제기돼 온 부분만 도려내 손을 보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마지막으로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 체제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데 원론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여러 차례 개헌을 거론했지만, 제대로 논의된 적은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사법 리스크'를 희석하려는 주장이라며 반대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사견을 전제로 "원포인트 개헌이더라도 정당 간 합의가 필요하며 사회적으로도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현재는 민생경제와 외교안보 등 산적한 과제 해결과 윤석열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헌이 시대적 사명인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장 당내에서 실질적으로 개헌을 두고 논의하고 있지는 않아 별로 공론화가 안 되고 있고, 지도부에서 딱히 논하고 있진 않다"라면서도 "대신 선거제 개혁에 대해선 박광온 원내대표 등이 의장님이 관심을 가진 부분에 대해 공감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의장님의 뜻을 의원들에게 잘 전달하고 같이 노력하자는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의 선거제도 개혁 원칙으로 △지역주의에 기댄 거대 양당 독식 완화 △비례성 강화 △다양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뒷받침함으로써 사표 최소화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기득권의 포기는 쉽지 않지만, 민주당은 절박한 심정으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여야는 선거제도 개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개헌은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 여야는 개헌 추진에 합의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개헌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2018년 3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4년 연임제와 지방자치 분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그해 6월 지방선거와 개헌합의안의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려고 했지만, 야당이 '청와대발 관제 개헌'이라며 반대해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개헌 논의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개헌은 블랙홀과 같아 모든 이슈를 다 빨아들인다"며 "양당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 개헌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언근 전 부경대 초빙교수는 "여아가 여러 현안을 두고 가파른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데다 선거(총선)가 점점 다가올수록 개헌에 대한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5선 중진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7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여야는 자신들의 세력,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내년 총선 공천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을 것"이라며 "내년 총선 직후 개헌을 전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서로의 분란과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