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여의도=설상미 기자] "정의당의 책임 정치는 실종됐다. 자정 능력도 상실했다. 좌고우면 정치로 많은 분이 정의당을 떠났다. 정의당을 대체하는 진보정치 혁신 세력이 되겠다."
정의당을 탈당한 전·현직 당직자들이 '새로운 시민참여 진보정당 추진을 위한 제안모임'(새진추)을 꾸렸다. 정의당을 뛰어넘는 새 진보 정당을 만들겠다는 포부에서다. 정호진 새진추 수석대변인은 13일 <더팩트>와 만나 정의당을 떠난 이유로 '당의 자정 능력 상실'를 꼽았다. 정 대변인은 2012년 정의당 창당 원년 멤버로, 노회찬 전 대표 비서관 출신이다. 지난해 정의당의 6월 지방선거 패배 후 헌정사 최초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사퇴 권고 당원 총투표'를 대표발의해 40% 이상 당원 찬성을 이끌어냈다.
"정의당 창당 때부터 함께했다. 탈당이 쉬웠겠는가. 현 정의당은 더 고쳐 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정의당은 작은 정당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한 명의 목소리, 행동 자체가 당의 모든 것으로 비추어진다. 여론조사에서 호감도만큼은 1등이던 당이 지금은 비호감 1등 정당이 됐다. 시민들로부터 ’내가 아는 정의당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데, 정말 뼈아팠다. 진보 정당은 책임을 강조하는 정당이다. 사퇴 권고안 부결 후에도 당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해 아쉬웠다."
정당 지지율 4%. 정의당의 현주소다. 정의당은 과거 노회찬, 심상정 등 굵직한 스타 정치인 배출하며 우리나라 대표 진보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2018년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정당 지지율을 앞서며 제1야당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하지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찬성,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으로 인한 ‘민주당 2중대’ 논란이 일었다. ‘검수완박’ 국면 내 갈지자 행보로 당의 노선마저 불분명해졌다는 악평이 잇따랐다.
"현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버렸다. 올해도 2중대 논란 속에서 많은 분들이 당을 떠났다. 이정미 대표께서 김건희 특검 관련된 여론이 형성됐을 당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민주당과 함께 ‘쌍특검(김건희 주가조작·대장동 50억 특검)’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좌고우면 정치였다. 다른 당과의 관계로 정치적 역할을 규정해 버렸다. 자존감 낮은 정치다. 정의당은 정의당의 길을 가야 한다."
정의당을 향한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제20대 대선에서 심상정 전 대표는 2.37%(80만 3358표)를 득표했다. 19대 대선에서 심 전 대표가 얻었던 6.17%(201만 7458표)에 반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어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기초단체장을 1석도 얻지 못하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당은 재창당을 선언하며 ‘환골탈태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이렇다 할만한 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의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제는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배제하고 고립하고 심지어 나가라고 한다. 좌고우면 정치로 당원은 물론 시민들의 신뢰마저 상실했다. 여야 당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 정의당은 당원이 줄어들고 있다. 기존 의원들에 대해 많은 당원들이 강력한 경고를 해야 된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미 대표님은 ‘원팀’이라고 표현했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정당이다."
여성 인권 등 젠더 의제를 앞세웠던 정의당을 뒤흔든 사건들이 있다. 박원순 전 시장 조문 파동, 김종철 전 대표 성비위 등이다. 2020년 7월 박 전 시장 서거 후 류호정, 장혜영 의원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앞세워 조문을 거부했다. 거부 논란으로 정의당 일부 당원들의 항의성 탈당이 이어졌다. 새진추는 정의당의 이 같은 젠더 노선 역시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조문 거부에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는 결론으로 일단락됐다. 당시 심상정 전 대표가 조문 거부에 대한 사과를 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정당으로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대중정당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김종철 전 대표 성비위 사건 당시 있었던 ‘2차 가해 제보’ 등은 검찰형 페미니즘이다. ‘내가 얘기한 것과 다르면 넌 페미니즘이 아니야’ 이런 식이다. 6411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여성 노동자들도 공감하는 페미니즘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성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길이다."
이러한 새진추의 움직임을 두고 정의당에서는 반발도 감지된다. 박원석 전 의원은 새진추를 향해 ‘조국 수호 세력’이라며 "두 비례대표 의원을 겨냥한 의원직 사퇴, 권고, 당원 총투표, 이런 걸 주도하셨던 분들이 나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새진추 탈당 시점을 두고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회찬 전 대표의 추모 기간이자, 이정미 대표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에 반대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우리는 조국 수호 세력이 아니다. 그런 표현에 대해서는 굉장한 유감을 표한다. 탈당 시점이 아쉽다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다만 이번 탈당 러쉬는 갑작스러운 탈당이 아니다. 새로운 진보 정당 추진을 위한 정치적 로드맵을 짜기 위해서는 더 미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만약에 시간이 지나서 탈당했다고 해도, 그때는 또 아쉬움이 없었겠는가."정가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할 것이라는 ‘조국 신당’ 관측도 나온다. 정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조국 사태 시즌2’를 우려하며 일축했다.
"제1진보정당으로 우뚝 서는 게 1차적인 목표다. 조국 신당이 만약에 현실화된다면 조 전 장관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평가를 위한 선거가 돼야 한다. 생산적인 정책 경쟁과 논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다 왜곡될 수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다. ‘조국 사태 시즌2’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 정치에 도움이 되겠는가."
새진추는 연내 창당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진보 정당 노선 확립 △진보 정치 세력 개혁 및 확장 △ 5개 시·도당의 법정 당원(5000명 이상) 등 창당까지 여러 과제가 남았다. 정의당 첫 당 대표를 맡았던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가 함께한다. 최종 목표는 내년 22대 총선에서 진보 정당 최초 교섭단체(20석)다.
"천호선 대표는 말 그대로 큰 정치인이다. 천군만마를 얻은 거다. 우리는 제3세력이 아니라, 진보정치 전체를 혁신하고자 하는 세력이다. 이념 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대중 중심 정당이 돼야 한다. 노동자, 서민,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에게 정치적 시민권을 부여하겠다. 민주당보다 노무현답게, 정의당보다 노회찬답게 거침없이 나가겠다. 정의당을 대체하는 대표 진보 정당으로 원내에 진출하고자 한다. 내년이면 2004년 민주노동당 첫 원내 진입 후 20년이 되는 시점이다. 진보 정당으로서 국회 교섭단체를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