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 외교·통일부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허주열 기자] -정부가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기 위해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갑자기 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갑자기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민주당 간판 걸고 한 판 붙자"고 뜬금포를 날렸다. 다음 날 대통령실에선 원 장관의 발언과 결이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안전성에 문제없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IAEA 등 국제기준에 부합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고 취재진의 입장을 묻는 말에 'IAEA의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고 일일이 답하는 식으로 입장을 밝혔다. 이 가운데 대통령실 관계자가 '오염수'를 '처리수'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 시절 민감한 사안에 대한 입을 열면서 정치권에 등판했다. '추다르크'의 등판과 매서운 발언에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속내는 복잡한 모양새다.
◆국토부 장관 '백지화 선언' 하루 만에 대통령실 "주민 여론 검토해 판단" 딴소리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어.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과 관련해 올 5월 갑자기 노선이 변경됐고, 공교롭게도 변경된 지역 인근에 김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게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지.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업 전면 백지화'를 깜짝 선언했는데, 어떻게 된 거야?
-먼저 이 사업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면 2017년 1월 국토부가 발표한 사업이야. 이후 2021년 4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 2022년 3월 타당성조사, 6월 전략환경영향평가 등에선 양서면이 고속도로의 종점이었는데, 올 5월 국토부가 발표에서 갑자기 종점이 강상면으로 바뀌었어. 변경된 종점에 김 여사 일가의 땅이 있고, 김 여사 측에 특혜를 주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거지. 6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에 대해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적극적으로 반박했어. 특히 원 장관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의혹이 제기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깜짝 선언했지. 당시 현장에선 다른 장면이 더 주목받았어.
-브리핑이 끝나고 퇴장하는 원 장관에게 기자들이 따라붙었을 때야. "백지화 결정은 대통령실과 논의가 있었느냐" 등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지. 원 장관은 아무 대답이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카메라 앞에 멈춰 서더니 큰 목소리로 "이재명 대표, 민주당 간판 걸고 한 판 붙읍시다"라고 말했어. 취재진은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이런 분위기였지.
-원 장관의 모습은 국토부 행정을 책임지는 수장인 장관보다 정치인에 가까웠어. 마치 출정식을 연상케 했달까. 원 장관은 브리핑 전 주머니에서 종이를 두 장 꺼내서 읽었어. 준비된 서류는 아니었고, 노란 메모장에 직접 쓴 글씨가 보였어. 목소리 톤은 브리핑 내내 높았고 내용도 강렬했어. 민주당을 향해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민주당 간판 내려라",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의원들은 정치생명을 걸어라", "사업 결정에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장관직은 물론 정치생명도 걸겠다"고 했어.
-원 장관은 이렇게 야당을 향해 강한 메시지를 쏟아낸 배경에 대해 "민주당의 선동 프레임에 국력을 낭비할 수 없다"고 했어. 장관이 나서서 야당을 국력을 낭비하는 적으로 규정한 셈이야. 게다가 야당 대표를 향해선 선전포고까지 했고. 원 장관은 그동안 총선 출마설에 선을 그어왔는데 이번 행보를 보면 '글쎄'.
-그동안 어떤 의혹이 제기될 때 정부 부처가 보이던 반응과도 상반돼. 정부는 통상 사실관계를 설명하면서 해명하곤 하지. 그런데 '전면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뒀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대통령실과의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원 장관은 일단 아니라고 하더라고.
-이상한 점은 또 있어. 김 여사 일가 의혹에 대해 국토부와 국민의힘이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었는데, 당정이 정책 조율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혹에 대응하려고 고위 당정협의회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야. 다만 정부나 당 차원에서는 아니고 국민의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차원에서 먼저 요청했다고 했지.
-비공개회의 때도 원 장관은 회의장에서 두 차례 나와서 다른 빈 회의장에 들어갔었어. 기자들이 따라붙자, 보좌진이 "전화 통화 때문"이라고 답해줬는데. 긴급회의 중에 나와서 받아야 할 정도의 중요한 전화가 뭘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다음 날 대통령실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주민 여론을 검토해 판단하겠다"는 이야기가 문화일보 보도를 통해 흘러나왔어. 해당 매체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사실상 사업 필요성을 점검하고 주민 의견을 들어 재추진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해석도 내놨지. 주무 부처 장관이 '백지화한다'고 한 지 하루 만에 대통령실이 장관의 말을 뒤집은 셈이지. 이재명 대표까지 걸고넘어지면서 원 장관이 센 발언을 쏟아냈는데, 입장이 좀 난처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IAEA 최종 보고서 나왔다…빨라진 '오염수 방류' 시계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의 안전성을 검토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종합 보고서가 4일 나왔어. 결과는 예상대로 '국제적인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이었지.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는 7일 오염수 방류를 위한 도쿄전력의 설비 점검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며 합격증을 교부했어.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위한 모든 관문을 통과한 셈이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국내 여론이나 주변국 반응 등을 검토한 후 방류 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여.
-다른 나라들도 IAEA 종합 보고서에 대한 입장이 있을 텐데.
-중국은 즉각 반발했어. 중국 외교부는 4일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IAEA의 보고서는 평가 작업에 참여한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했고, 관련 결론이 모든 전문가의 만장일치로 승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성급한 보고서 발표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어. "IAEA는 방류 계획의 적법성을 검토하지 않았고, 정화 장비의 장기적 효용성을 평가하지 않았으며, 오염수 관련 데이터의 정확성을 확인하지 않았다"면서야. "일본은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려는 계획을 중단하라"고 반대 입장도 명확히 밝히면서 "일본이 자기의 고집대로만 한다면 모든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했어.
-반면 미국은 IAEA 보고서 결과를 환영한다는 입장이야.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5일 성명을 통해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IAEA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과학에 기반한 투명한 절차를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일본이 IAEA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어.
-IAEA 보고서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일본을 방문 중인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는 건 들었다"면서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종합 보고서는 과학적으로 결점이 없다"고 답했어. 로이터는 "보고서에 참여한 국제 전문가 1, 2명이 우려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어. 종합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11개 국가는 한국, 중국,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프랑스, 마셜군도, 러시아, 베트남이야.
-그로시 총장은 "IAEA 보고서가 오염수 방류 계획을 승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이 계획을 지지하거나 이를 권장하지 않지만, 이 계획이 표준에 부합한다고 말할 뿐"이라고 했어.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 한국 편을 들지 않는다"면서야. 결국 방류냐 아니냐,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일본 정부라는 거야.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 'IAEA 보고서가 오염수 해양 방류의 부적이나 통행증이 될 수 없다'는 중국 측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해. 하지만 IAEA 보고서 결과는 일본 정부가 말하는 '과학적 근거' 면에서 명분을 주고 있잖아. 그로시 총장이 만에 하나 보고서 결과가 문제 될 것을 대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야. 실제 보고서 첫 페이지에는 "IAEA는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 방류에 책임지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어.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혹시 오염수 방류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건데 이상한 대목이야.
-IAEA 종합 보고서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은 뭐야?
-정부는 종합 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IAEA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권위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그 결론에 존중한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이전부터 말씀드려 왔다'고 강조해 왔어. 정부는 7일 자체 검증 보고서 결과에 대해서도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IAEA 등 국제기준에 부합함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어. 그렇지만 IAEA의 결론에 동의한다 해도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는지, 중국처럼 반대하는지에 대한 입장은 다를 수 있잖아. 이 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야.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일본의 최종 방류계획이 확정 발표되면 정부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말했어.
-일본의 오염수 방류 시계추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 불안감이 들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우리 정부와 '과학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일본을 못 믿어서가 아니야. '오염수가 방류되더라도 안전하다'고 납득하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한데 '과학적 근거'들은 소화할 새 없이 쏟아지는 느낌이어서랄까. 우리나라는 일본의 최인접국이고, 우리는 오염수 방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당사자야. '만의 하나' 상황 걱정을 할 수밖에 없어. 정부가 반대 의견이나 의혹 제기를 '괴담'으로 치부하지 말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충분히 설명하려는 노력을 더 해주길 바라.
◆IAEA 보고서 긍정 검토 신호? 대통령실 "'오염수' 말고 '처리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해양에 방류해도 안전성에는 문제없다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양국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어. 대통령실 입장은 정확히 뭐야?
-대통령실은 IAEA 보고서 공개 다음 날인 5일 "IAEA의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면서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최우선을 두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어. 다만 서면 브리핑이나 대면 브리핑을 통해 나온 건 아니야. 대변인실 관계자가 관련 내용을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답해주는 식이었어. 어느 정도 입장이 마련된 건데, '차라리 서면이나 대면 브리핑으로 입장을 내달라'는 물음에 관계자는 "우리가 일부러 브리핑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일정이 바빠서 못 한다'라고 답하더라고.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아 많은 기자의 물음에 일일이 답변하는 게 훨씬 번거로울 텐데 어째서 아직도 공식 입장을 안 내는지 의아해.
-국제법상 오염수 방류는 주변국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결단하면 방류하게 되는 건데,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아서 대통령도 어떻게 대응할지 난감할 것 같아.
-일단 다음 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의'에 참석 차 방문하는 리투아니아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여. 대통령실은 일본 정부와 조율 중이라고 밝혔어. 성사된다면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 회담이야. 이번에는 특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야. 기시다 총리가 IAEA 보고서를 근거로 오염수 안전성이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며 방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이해를 구할 거라는 일본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어. 대통령실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회담이 성사된다면 최근 일어난 이슈니까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문제도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어.
-대통령실 관계자가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고 언급한 거야?
-맞아. 이 부분을 놓고도 대통령실 기자들 사이에서 "이제 정부 공식 용어가 '처리수'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와. 단어 선택만 보더라도 대통령실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외교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다고 자평해 온 윤 대통령으로선 이번에 최대 난제에 직면한 것으로 보여. 취임 이후 줄곧 일본에 러브콜을 보내더니 올해에는 한일 정상 셔틀외교를 복원했고, 또 8년 만에 100억 달러의 한일 통화스와프(교환) 체결, 4년 만에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등 수출 규제 복원 등 양국 경제 분야에서도 훈풍이 불었어. 일본 측이 오염수 방류 초읽기에 돌입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할 것 같은데 윤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몹시 궁금해.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허주열 기자,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원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설상미 기자, 송다영 기자
☞<하>편에 계속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