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혁신기구(가칭) 책임자로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하며 당 쇄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혁신기구에 전권을 위임한다고 공언하며 혁신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보였다. 다만 혁신기구의 방향이나 혁신 의제 설정 등에 있어 비정치인인 김 교수가 총선을 앞두고 실제로 당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당내 기대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교수 영입 사실을 밝히며 "혁신기구가 우리 당과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BBS 라디오에 나와 "혁신기구는 기득권 타파, 대표성 확대, 정치윤리 강화, 당내 민주주의 강화 등 크게 네 가지의 목표로 활동한다"며 "(김 교수가) 아마 네 가지 부분을 잘 조화롭게 고민하시고 논의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날 혁신기구 수장에 김 교수를 선임했다. 이는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과거 '천안함 자폭설' 등 논란으로 임명 9시간 만에 사퇴한 지 열흘 만이다. 김 교수는 금융보험 전문가로 문재인 정부 당시 여성 최초로 부원장급인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으로 발탁돼 지난 3월 임기를 마쳤다. 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과 제재심의 위원 등을 맡은 이력을 갖고 있다. 2015년 김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문재인 대표 시절 당무감사위원을 맡은 바 있어 '친문계' 인사로 분류하는 시선도 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인선 배경을 두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지만, 원칙주의자이면서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이라며 "금융위 법률 소비자 보호 분야, 어려움에 처한 금융 약자 편에서 보여주신 분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당 지도부는 혁신기구 활동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았으나, 혁신위원 구성을 마무리하고 나면 오는 9월 정기국회 전후로 혁신위 운영을 마무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은경 체제' 혁신기구가 향후 의논할 의제로는 △'2021년 돈 봉투 살포 의혹', '김남국 코인 의혹' 등 민주당 악재에 따른 도덕성 회복 △총선 승리를 위한 공천룰 등 당내 제도 정비 △당내 계파 갈등 극복 △대의원제 폐지 △강성 팬덤 정치와의 결별 △이재명 체제 1년 평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친명계와 비명계 의원들 사이에서 혁신기구가 다뤄야 하는 의제가 극명하게 갈리는 점, 김 교수가 당내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탓에 임명 이후 어떤 방향으로 혁신기구를 이끌지 알 수 없다는 점 등이 향후 난관으로 꼽힌다.
친명계는 '대의원제 폐지' 등 당원 영향력 강화와 공천룰 수정을 요구하는 반면, 비명계는 팬덤정치와의 결별과 이 대표 체제 평가가 1순위로 이뤄져야 한다고 혁신위에 요청했다. 전권을 위임한다고 공언은 했지만, 혁신기구의 혁신안을 당 지도부가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친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최고위회의에서 "이재명 지도부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약하고 당선됐다"며 "당원과 소통이 잘 되는 민주정당,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실 것을 부탁한다"고 김 교수에게 당부하며 '대의원제 폐지'를 강조했다.
반면 비명계인 김종민 의원은 같은 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이재명 지도부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왔다"며 9월 정기국회 전까지 혁신기구에서 현 체제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 대표 체제 1년 평가는) 국민들이 다 궁금해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것은 혁신위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비명계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만약 혁신기구에서 대의원제 폐지 이야기가 나온다면 '혁신기구를 폐지해야 한다'며 반발할 의원들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라며 "대의원제 폐지와 혁신이 무슨 상관인가. 자기 정치 하겠다는 사람들의 궤변일 뿐"이라고 말했다.
혁신기구의 방향이나 논의 의제의 문제를 떠나, 혁신기구 자체에 대한 당내 기대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광온 원내대표가 혁신기구 설치를 공언하고 당 혁신기구 수장이 임명되는 데에만 근 한 달이 지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대표 체제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계속되며 당 내홍 가능성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재선 의원은 "혁신기구의 경우 당 내부의 긴밀한 문제들에 대해서 의논해야 하므로 난도가 높은 직이다. 그 때문에 정치와 정당에 대해 '백지' 상태인 김 교수가 들어와서 무엇을 바꾸겠다고 할지에 대해서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도 "혁신기구가 뭘 혁신하겠나. 이 대표 체제에서는 무슨 혁신안을 내놔도 국민들이 보기에는 민주당이 바뀐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