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1호인 '노동개혁'이 삐걱거리고 있다. 집권 초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등 고질적인 노동계 문제에 칼을 빼들며 중도층 지지를 얻었지만, 집회 제한 입법 추진부터 최근 경찰의 '노조 과잉 진압'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억압 프레임'에 갇힌 모양새다. 양대 노총 중 하나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탈퇴도 고려하고 있어, 개혁 동력을 상실하는 게 아니냐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노조를 정조준해 온 윤석열 정부는 최근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간부를 경찰이 긴급 체포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간부 1명이 경찰 곤봉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사진은 온라인상에 급속히 퍼졌다.
'과잉 진압' 논란 여파가 심상찮다. 그동안 윤 정부는 노동조합의 집회가 소음, 교통 체증을 유발해 시민 자유를 침해한다며 강경 대응해왔고 그에 따라 지지율도 올랐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과 건설 노조 등에 강경 대응하면서 30%대 중반대 지지율을 회복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갤럽이 지난 2일 발표한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대상, 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1%포인트 하락했고 부정평가는 2% 상승했다. 긍정 평가 이유로 '노조 대응'은 6%에 불과했다. 조사는 '과잉진압' 논란이 불거진 기간(5월 30일~6월 1일)에 실시됐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에 대해 "보수층의 결집 이상의 의미는 없다. 30%대 지지율에서 한 2~3% 정도 회복하는 것을 노동조합 공격의 반사이익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했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도 직면했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유일하게 노동계 대표로 참여 중인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탈퇴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오는 7일 광양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경사노위 탈퇴 여부를 공식 논의한다. 그동안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등 윤 정부의 노동정책 전반을 반대해 왔던 한국노총이 이번 '과잉 진압'을 계기로 돌아선 분위기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탈퇴는 노동 개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높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일 논평에서 "공권력을 '홍위병'으로 동원하는 정권의 행태가 '군부독재의 통치'를 떠올리게 한다"며 "노·정 관계가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윤석열 정권에 있다"고 맹비판했다.
여권에서조차 사회적대화 기구인 경사노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난 1일 '노동개혁특위 확대회의'에선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에 대한 불만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인 김형동 의원은 지난 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사노위가 힘을 내서 제대로 운영되고 정부의 개혁 입법에 뒷받침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온 건 사실"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노동개혁'과 관련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과제로 제시하며 현행 52시간 근무제·연공급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유연화, 근로현장 안전 개선 등을 추진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통해 노동 내 약자 권익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또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앞세워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고용 세습 근절 추진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노조 때리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간이나 불법 집회 전력 있는 단체의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법 개정 추진, 노동자의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금지한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면서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작 국민적 관심사인 '노동 정책'은 미적지근하다. 근로시간 개편은 지난 3월 '주69시간제'를 성급하게 내세웠다가 현재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2월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직무성과급 임금체계 개편안도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노동자 간 격차 완화를 해소하는 방안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 마련은 보이지 않는다 지적도 받고 있다.
성공적인 노동개혁은 향후 국정운영 동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내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윤 정부의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노정 관계를 사회적 대화를 통해 회복하고, 노동정책의 우선순위와 접근방식 등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의 노동개혁은 양날의 칼이다. 잘하면 공정과 법칙, 노동시장의 선진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접근 방식이나 대안이 잘못되면 노동 탄압이 된다"면서 "노동자들의 행태에서 잘못된 걸 짚어서 바꾸면 국민이나 노동자 전체적으로 박수를 받을 텐데, 정책적 실수가 너무 많다. (최근 행보는 노동개혁의) 진정성마저도 스스로 훼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