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영남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인 이날 보수의 심장인 대구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 대표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예방해 윤석열 정권과 '윤심'에 기운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또 이 대표는 경남 양산을 찾아 '책방지기'가 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을 찾아 신구 민주당 세력이 통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지도부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험지를 찾아 지지세를 결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지난 9일부터 1박 2일간 영남을 찾았다. 이날 오전 당 지도부는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민주당 대구광역시당 개소식에 참석했다. 또 이 대표는 국민의힘 소속인 홍준표 대구시장을 예방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과거 대선 주자였으며, 야당 대표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김기현 대표로부터 당 상임고문직 해촉을 통보받았다. 이 탓인지 이 대표는 예방 자리에서 홍 시장과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발언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다.
홍 시장은 이 대표를 향해 "윤석열 정권에서 대부분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실에 있다"며 "정부가, 집권세력들이 정치에 노련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면 민주당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풀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홍 시장은 야당을 향해 "민주당이 현안을 처리하는 게 속도감도 있고 아주 빠르다"고 칭찬한 반면 "우리 당은 (내가) 거의 30여 년 이 당에 있었는데 잘못하고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며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특히 홍 시장은 이른바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대표가 자진 탈당한 것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민주당은 문제 되는 사람들이 즉각즉각 탈당해서 당의 부담을 덜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 당은 그렇게 안 한다"며 "애들이 욕심만 가득 차서 당이야 어찌 되든 말든 내가 살아야겠다는 그 생각으로 하고 있다. 당에 대한 근심이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두 사람은 여야 간 협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홍 시장은 "우리가 정치를 하더라도 정책을 비판하고 논쟁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인격을 폄하하면 그때부터는 정상적 논평이 안 된다"며 "옛날에 저희가 DJ 시절이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여야가 상임위에서 싸워도 끝나면 바로 여의도 포장마차 가서 다 풀고 이튿날 또 싸웠는데, (지금은) 여야 관계가 그런 풍토가 없어졌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이 대표는 "국민의힘 원로니까 당에도 그런 말을 한 번씩 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자, 홍 시장은 "이야기를 하는데 당 대표(김기현)가 좀 옹졸해서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친윤'인 김 대표를 저격하기도 했다.
이후 당 지도부는 경남 양산으로 이동해 지난달 26일부터 '평상책방'을 열고 책방지기로 활동 중인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 대표가 새해 인사차 평산마을을 방문한 뒤 4개월 만이다. 이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양산행을 두고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오후 3시께 평산책방에서 민주당 지도부를 만났다. 지도부는 서점을 둘러보고, 책을 구매한 후 문 전 대통령과의 환담을 나눴다. 이후에는 문 전 대통령의 자택으로 이동해 약 40분가량 비공개 간담회도 가졌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간담회가 끝난 뒤 "문 전 대통령은 최근 국내외로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민주당이 단합하고 더 통합하는 모습으로 현재의 국가적인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화는 정치인에게는 일종의 의무와 같은 것"이라며 "대화가 없으면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고 권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이는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회담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는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또 취임 1주년에도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등 최근 윤 대통령이 국민들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권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때 야당 사무실을 방문하셨던 그 일을 회고하면서 당시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했던 이야기를 했다"라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직전 당시 제1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당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취재진이 '최근 대통령실이 제의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 관련 언급이냐'라고 묻자 권 수석대변인은 "과거에 대통령으로 재임하시면서 느꼈던 것들"이라며 "문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들과 여러 채널로 대화도 하고,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서 야당 대표들과도 만남을 진행하셨으니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최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으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비교적 지지세가 약한 영남 지역을 방문해 통합과 협치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의 의혹을 조기 진화하기 위한 당 지도부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지도부는 오전 김 의원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매각 권유', '투명하고 신속한 진상조사', '향후 가상자산을 공직자 재산신고에 포함하는 제도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어 당 수석사무부총장인 김병기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진상조사팀을 꾸려 오는 11일 첫 모임을 갖기로 했다.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홍성국, 이용우, 김한규 의원 등도 진상조사단에 합류한다. 코인과 관련한 내용은 일반인들의 이해가 어려운 점을 들어 외부의 가상화폐 전문가도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도부의 현장 행에도 '의혹 해소가 먼저 되지 않으면 당 지지율은 떨어지기만 할 것'이라는 공산이 크다.
한 중진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항상 30%대의 지지율이 나오고 40%는 항상 '유보층'이다. 이들은 여당도 못 믿고, 야당도 못 믿겠다 하는 사람들인 거다. 야당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형악재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며 "오는 15일 있을 '쇄신 의원총회'에서 김 의원 문제를 포함해 총선 대비를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칼끝이 목 앞에 와 있는 상황인데, 당 지도부가 위기감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