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전국에서 '전세 사기'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집값 하향 조정 국면에서 '깡통전세'(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이하인 주택)에 대한 서민의 불안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특히 전세 사기에 일부 공인중개사가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개업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여야는 관련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지만, 실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서울 화곡동 '빌라왕' 사건과 인천 미추홀구 일대와 경기 구리시 전세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들이 입건되면서 공분을 샀다. 이뿐 아니다. 경찰은 지난해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전세 사기를 특별단속해 1941명을 검거했는데, 각종 전세 사기 범행에 가담하거나 불법 중개행위를 한 공인중개사 373명도 포함됐다.
부동산 거래 기회가 많지 않은 임차인은 계약할 때 통상 공인중개사를 믿고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만큼 중개인을 통해 임대인 정보를 얻는 등 안정적으로 계약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세입자의 기대와 달리 공인중개사가 전세 사기 대응에 소극적이거나, 일부는 직접 전세 사기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면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박순남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24일 국회에서 <더팩트>와 만나 "저희 같은 피해자가 더 발생하지 않으려면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며 "중개업자가 계약 시 전세 사기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런 책임들을 다하지 않는 중개업자들에게는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최근 전세 사기에 주범으로 가담한 중개인은 수사받고 있지만, 여러 형태로 가담한 중개인은 여전히 (영업을) 잘하고 있다"면서 "갭 투기가 가능한, 자기 자본 없이 연속해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공인중개사를 세게 처벌하더라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겠지만, 당연히 책임을 더 강화하는 입법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개사의 전세 사기 예방책임을 강화한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달부터 중개사는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 세금·이자체납 등 신용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임차인의 권리 보호를 강화한 것이다. 정부는 오는 6월 중개사가 해당 주택의 선순위 권리관계 및 전입세대 열람 등을 요청하면 임대인의 정보제공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국회에도 공인중개사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다. 중개인에게 임대인의 미납 국세 및 지방세 열람 신청 권한과 임대인이 임대사업자일 경우 임대보증금 보증 가입에 관한 사항을 설명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지난달 3월 국회에 제출됐다.
또한 부동산시장 교란 행위 등을 한 자에 대해 공인중개사의 결격사유로 해당하도록 하고,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소하는 등 부동산시장 교란 행위자가 공인중개사 관련 업무를 일정 기간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개업공인중개사는 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안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세 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발의된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공인중개사의 정보제공 의무 등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들은 최근 발의됐다. 다만, 중개사와 관련한 20여 개의 법안이 해당 상임위에서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공인중개사협회의 법정단체화 및 회원 의무가입과 지도·관리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협회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재 책임 규정이 없어 일부 중개업자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공인중개사법 등에 상당히 많은 규율과 규제들이 갖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제는 중개업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협회에 조사 권한이나 지도·감독의 기능을 부여한다면 전세 사기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공인중개사협회의 임의설립 규정을 법정 단체로 규정하는 내용이 핵심인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 발의된 이후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협회가 회원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도·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사기나 부정한 방법 등 무질서한 중개행위로 인해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 어려움이 다수 발생해 내부의 정화작용이 힘든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한편 국회 국토위는 오는 28일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자 구제와 관련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안'(김정재 의원 대표발의)을 포함해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조오섭의원 대표발의), '임대보증금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심상정 의원 대표발의),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공인중개사법 개정안' 등을 상정해 심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