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정부가 전세 사기 대책 특별법을 오는 27일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과 피해자들이 요구한 임대차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자금 여력이 없는 피해자들에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정부가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서울시 강서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26일 발의를 위한 실무 준비를 마치고 27일 (전세 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부처별 세부 추진계획 및 관련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 장관은 "입법 절차에 시일이 조금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당 원내대표단이 27일이나 28일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야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을 보니 법안 자체에는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다. (야당의) 보증금을 반환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안) 분리 처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을 끌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야당의) 전향적인 입장 표명이 있었다. 국회의장이나 원내대표단이 협조해 준다면 이번 주 내에도 특별법 통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정부·여당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입법 과정에서 거치는 국회 상임위, 법사위 심의, 의결 등 절차를 단축해 발의 직후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특별법은 정부 입법보다 절차가 빠른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될 예정이다,
특별법은 전세 사기 피해자가 해당 주택을 경매에서 낙찰받을 수 있게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피해자가 이를 원치 않을 시 LH가 매입임대주택 제도를 활용해 해당 주택을 매수해 피해자에게 임대하도록 한다. 다만 올해 LH 매입임대주택 예산은 5조 500억 원으로 작년보다 3조 원가량 삭감된 상태다.
원 장관은 매입임대를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관련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재정 당국과 얘기가 돼 있다"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증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지난해 매입임대 미집행 잔액이 많이 남았다"며 "예산 책정은 필요한 물건을 합당한 금액에 샀는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갔는지 등을 평가해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안을 두고 아쉽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우선매수권이 부여된다 해도 매수 자금 여력이 부족한 피해자에겐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LH 매입임대 또한 피해자의 보증금을 모두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원 장관은 야당과 피해자들이 요구해 온 '선(先) 보상 후(後) 구상권 청구' 방안에 대해서는 기존의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원 장관은 "사기 피해를 국가가 떠안는 건 가능하지 않고, 가능하다 해도 범죄를 국가가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며 "국가가 회수할 금액이 제로(0)인 채권을 피해자가 요구하는 대로 값을 주고 사는 건 또 다른 갈등을 만들고, 다른 범죄 피해자와 국민들이 들고일어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은 이날 정부·여당안이 피해자 구제에 미흡하다며 공공 매입을 통한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를 주장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채권을 매입해 피해 금액을 먼저 보상한 뒤 경매·공매·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앞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조오섭 민주당 의원은 각각 지난 3일과 지난달 30일 관련 특별법을 발의한 상태다. 두 안 모두 정부가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의당 전세 사기 깡통전세 특별대책위원장을 맡은 심상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에는 △보증금 채권 매입 방식 △국세 안분 조치 △피해자 보호를 위한 경과규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작년 국정감사 때 갭 투기로 인한 깡통전세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깡통전세에 대한 대책으로 공공 매입의 필요성도 일관되게 주장했다"며 "모든 것이 만시지탄이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민생 앞에서 정쟁이 아닌 문제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정부가 피해 유형과 실태를 파악해 종합적인 맞춤형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공공 매입임대 예산 추경 편성 △캠코가 은행이 보유한 선순위 채권 매입 △피해자 대상 저리 대출의 보증금 및 소득 기준 완화 △피해자 대상 대환대출 보증 및 대출 기관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전세 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해 "전국적인 전세 사기 속출은 단순한 개인 간의 계약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이라며 "부동산 과열을 방치한 정부 정책과 갭투자를 악용한 불법 투기 세력이 만들어 낸 이번 사태에 정부는 결코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어 "지금 가장 중요한 쟁점은 공공 매입 문제"라며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저금리 대출로의 전환만으로는 더 이상 빚을 질 여력이 없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예산안 책정 당시 삭감한 공공주택매입예산 3조 797억 원을 복구한다면 지금 당장 약 1만 5000가구의 피해자를 위한 공공 매입을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오는 28일 전체회의를 열고 정부·여당안과 심상정·조오섭 의원안을 비롯해 전세 사기 예방법(공인중개사법 등 4건)을 함께 상정할 예정이다. 국토위는 다음 달 1, 2일 중 법안소위를 열고 이들 법안을 병합 심사할 방침이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날 임차인의 보증금을 우선 보호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 또는 공매에 넘어가도 해당 주택에 부과된 세금보다 세입자의 전세금을 먼저 변제하도록 한다. 여야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 입장에서 시급한 법을 처리하자고 합의한 만큼 개정안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